아기는 선하게 태어나 혐오를 학습한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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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도 선악 구분 가능해한 살배기 아기들에게 공을 돌려주는 '착한 인형'과 공을 갖고 달아나버리는 '못된 인형'이 나오는 인형극을 보게 했다. 극이 끝난 후 대부분의 아기들은 못된 인형이 갖고 있는 간식을 빼앗았다. 못된 인형의 머리를 때리는 아기도 있었다.
혐오 감정은 자라면서 학습
이성적 훈련 통해 도덕적 성숙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도덕감각은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악의 기원>에서 아기의 행동 속에 숨겨진 인간 도덕성의 기원을 탐구해나간다. 블룸 교수는 위의 실험을 통해 "갓난아기에게도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으며, 도덕성의 일부는 타고난다"고 주장한다.블룸은 도덕성의 씨앗은 이미 아기 때부터 심어져 있다고 말한다. 마치 팔과 다리처럼 공감이나 동정심, 정의에 대한 감각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기들이 착한 사람에게는 끌리고 못된 사람에게는 반발하는 모습이 도덕적 감각의 증거라고 해석한다. 생후 3개월 된 영아들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인용한다.
다만 아기의 도덕성은 완벽하지 않다. 낯선 사람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의 집단 외에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기는 낯익은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낯익은 사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좋아한다. 양육자가 여성이면 여성을 더 좋아하고, 남성이면 남성을 더 좋아한다. 백인 아기는 아프리카인이나 중국인보다 백인 얼굴을 보는 걸 더 좋아한다.혐오나 차별 등 비도덕적인 감정은 자라면서 학습·강화된다. 아기들은 혐오를 모른다. 2세 미만 아이들에게 땅콩버터와 치즈를 재료로 개똥처럼 만든 음식을 개똥이라고 하면서 줘도, 아이들은 대부분 다 그것을 먹는다. 메뚜기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아이들이 많다.그러다 유아기 어느 때가 되면 스위치가 켜지듯 아이들은 어른처럼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혐오하게 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배변 훈련이 남긴 트라우마라고 설명한다.
블룸은 아기가 가지고 있는 도덕성의 씨앗이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선 '이성적 진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타고났지만 미성숙한 도덕감각을 발전시켜 성숙한 도덕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단 설명이다. 저자는 우리의 도덕적 결정이 이성과 숙고를 통해 더욱 고차원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깨달은 것처럼, 이성적 사고를 통해 도덕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타고난 선함을 이성적인 훈련을 통해 완성시킴으로써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게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과 연구가 이해하기 쉬운 해설과 함께 소개돼 있어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