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한 고양이의 뜻하지 않은 단체 생활…동물 이야기로 힐링 선사한 '플로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라트비아 천재 감독 질발로디스의 '플로우'
판씨네마
지난 4일 밤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엔딩 크레딧이 오르자 4200여 명의 관객이 뜨겁게 환호했다. 이날 부산국제영화제(BIFF) 오픈 시네마 부분으로 상영된 애니메이션 '플로우'(2024)는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Show, Don’t tell)라는 격언을 실감하게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마치 무언가(無言歌)처럼 시각과 사운드만으로 85분을 채운다.

이 작품은 라트비아의 떠오르는 애니메이션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30)의 두 번째 장편으로 올해 5월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으로 처음 공개됐다. '애니메이션계의 칸'으로 불리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 음악상 등 4개의 상을 휩쓸어 화제가 됐다.영화 배경은 종말이 가까워진 세상. 폐허가 된 원형 극장, 방치된 조각상…. 인간은 흔적만 보일 뿐 등장하지 않으며 동물들만 세상에 남아 살아간다. 그러던 중 거대한 홍수로 강이 넘치면서 온 세상이 순식간에 물에 잠긴다. 혼자 살던 회색 고양이는 집을 잃고 다른 동물들과 조각배를 타고 생활하게 된다. 평생 개인주의자로 살던 고양이가 자연재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단체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동물들을 의인화하지 않는다. 최대한 동물 그 자체로 보이게끔 한다. 고양이를 비롯해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카피바라, 뱀잡이수리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말하지 않고 '야옹' '멍멍' 같은 울음소리만 낸다. 대신 눈동자의 크기, 표정 근육, 동작 등 비언어적 소통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영화는 이런 그 동물만이 지닌 고유의 비언어적 표현을 최대한 우아하고 정교하게 담아낸다.
한배를 탄 이종(異種)의 동물들은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 겁 많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회색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리트리버의 모습은 보편적인 개와 고양이의 관계성을 보여줘 공감을 자아낸다. 카피바라는 위기의 상황임에도 굼뜨고 평화로우며, 여우원숭이는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하고 물욕이 많다. 동물들은 서로를 관찰하며 때론 갈등하다가 자연스럽게 서로를 받아들인다. 이들은 재해라는 위기 앞에 서로 협력하고 연대한다.플로우는 드림웍스, 픽사 같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질발로디스 감독은 손으로 그리는 대신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그림체는 심플하지만, 그 움직임은 매우 유려하다. 특히, 물과 숲 등 자연의 풍경을 회화적인 미학으로 담아냈다. 이에 따라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연상되기도 한다. 우아하고 긴 카메라워크는 다채로운 자연 속 동물들의 여정을 한층 숭고하게 만든다.

현악기, 타악기 등 어쿠스틱 악기를 중심으로 한 배경 음악은 생동감을 더한다. 음악은 클래식 작곡과 지휘를 하는 리하르트 자투페(Rihards Zaļupe)가 참여했다. 내년 상반기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