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 축제에 송이가 없네" 황당…줄줄이 '초비상' 걸렸다

전국 지자체에 들이닥친 '날씨 리스크'…계절 축제 '초비상'

늦더위에 송이버섯 수확량↓, 판매 업체도 절반으로 줄어
송이 아닌 '호두' 채취 행사... 영덕은 10월에나 첫 송이
퍼플섬 아스타꽃은 축제 취소, 불갑산 상사화는 '뒷북 개화'
"날씨는 예측 불가... 활동·경험 중시하는 축제 기획해야"
봉화송이의 모습. 사진=봉화군 제공
지방자치단체의 '효자 콘텐츠'인 계절 특산물·꽃 축제가 올해 때 아닌 기상 이변으로 악재를 만났다. 인적이 드문 시골로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명소와 특산물을 홍보하려던 지자체들은 울상을 짓고있다. 올 여름 폭염 같은 이상 기온이 향후 빈번해 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부 계절 축제는 앞으로 영영 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게 됐다.

송이 대신 호두 딴 봉화 송이축제

8일 봉화축제관광재단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열린 '봉화송이축제'에 참가한 버섯 판매 업체는 올해 10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23곳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축제 내내 팔린 버섯도 254kg(1억2000만원 상당)에 그쳤다. 재단 관계자는 "작년에는 업체당 1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송이버섯 작황이 좋지 않아 참가 업체가 줄고, 매출도 10분의 1토막이 났다"고 한탄했다.

가을까지 이어진 늦더위로 송이버섯이 아예 나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송이버섯은 기온에 민감하다.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올해는 9월 7일)로부터 일주일에서 열흘 후에 수확한다. 10~26도의 선선한 온도에서 적당한 습도와 일조량을 유지해야 송이가 잘 자라지만, 봉화군엔 지난달 말까지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이어졌다.

봉화축제관광재단은 매년 축제에서 관람객에게 소나무가 있는 '송이밭' 입장권을 주고 일정 시간 동안 송이를 채취토록 하는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올해는 송이가 사라지다시피 해 호두 채취 행사로 대체했다. 전통의 송이 축제가 '송이 없는 송이 축제'가 된 셈이다.국내 최대 송이 생산지인 영덕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군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번 달 19일까지 '명품송이 한마당'이라는 송이버섯 판매 행사를 진행 중이지만, 9월 내내 송이가 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박서환 영덕군 산림정책팀장은 "지난 1일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산림조합에 1kg 송이버섯 소매 신고가 들어왔다"며 "이렇게 생육이 늦어진 건 처음인데 내년에는 아예 10월부터 행사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남 신안군 퍼플섬 아스타 정원에 아스타꽃이 피어 있다. 사진=신안군 제공

신안 퍼플섬은 '앞으론 꽃 안 필까 걱정'

전에 없던 가을 더위에 전국 꽃 축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신안군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6일까지 10일간 '퍼플섬'으로 불리는 안좌도에서 개막 예정이던 '아스타 꽃 축제'를 아예 취소했다. 아스타 꽃이 만개해 섬이 보랏빛으로 덮이는 이 축제는 매년 40만명을 모았지만, 꽃이 피지 않아 행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퍼플섬을 관리하는 중부정원관리사업소 관계자는 "올해 열대야가 40일을 넘기다 보니 꽃 중 20%만 개화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여름철 무더위가 거세지는 만큼 고지대를 보유한 거창군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아스타 꽃 축제를 여는 것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광군은 '뒷북' 개화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군에선 지난달 13일부터 22일까지 '영광 불갑산 상사화 축제'가 열렸다. 붉은 상사화 꽃밭을 배경으로 가요제와 음악회, 향토음식관, 장터를 여는 영광군 대표 축제다. 축제 기간엔 24만명이 방문해 지난해보다 방문객이 적었지만, 꽃이 만개한 최근이 되어서야 사람이 몰리고 있다. 군 관계자는 "상사화는 비가 오고 날씨가 선선해진 9월 말부터 피는데, 올해는 축제가 끝난 최근에야 꽃 몽우리가 터져 관광객들이 꽃만 구경하고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의 소규모 지자체 입장에서 계절 축제는 지역을 알릴 기회다. 자체적인 문화 콘텐츠가 적고, 인적 자본이 부족한 소도시는 자연환경과 농산물·꽃 등을 알리는 게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상 기온이 심해질수록 공들인 축제가 타격받거나 완전히 '엎어지는' 경우도 늘 수 밖에 없다.전문가들은 경험을 강조하는 축제를 기획하는 것도 '계절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라면 공장을 보유한 구미시가 개최하는 라면 축제와 프랜차이즈 '김밥천국'의 약자가 지자체 명과 같다는 점을 살려 기획된 김천시의 김밥축제가 대표적 사례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기후는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인 만큼 계절 특산물 같은 즉자적인 테마에 의존하면 위험성이 크다"며 "꽃의 색깔이나 과일을 상징하는 단어 등 포괄적인 주제를 선정해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