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로 사라지는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 그리고 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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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지금 호암미술관에서는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의 국내 첫 전시 <더스트 (Dust)>가 열리고 있다. ‘더스트’는 우리말로 ‘먼지’다. 어째서 전시의 이름이 먼지일까.
호암미술관 전시
이번 전시의 규모는 상당히 크다. 작가의 기존 회화 및 조각 48점, 신작 회화 20점,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파스텔 벽화 5점이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먼지’라니.
![니콜라스 파티 〈폭포〉(2024) ©니콜라스 파티 / 사진. 김상태](https://img.hankyung.com/photo/202410/01.38234914.1.jpg)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담아내는 <십장생도 10곡병>, 김홍도의 <군선도>의 다양한 상징을 샘플링하여 상상의 팔선(八仙)을 형상화한 신작 초상 8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동굴과 백자 태호, 꽃, 버섯, 운석과 합체된 인간, 멸종된 공룡과 상상의 동물 용, 붉은 숲과 잿빛 구름 풍경 등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과 재현을 뒤섞고, 낭만주의적 숭고와 재난의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재현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니콜라스 파티의 <산>(2024)과 <금동 용두보당>이 함께 전시된 모습 / 사진. 김상태](https://img.hankyung.com/photo/202410/01.38234941.1.jpg)
그런데 파스텔은 지극히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다. 가루가 날리며 공기 중으로 쉽게 흩어진다. 그림에 사용되는 다른 재료들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지워진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미리 와서 6주간의 작업을 거쳐 5점의 벽화를 그렸다. 호암미술관의 전시실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벽화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서 그린 대단한 작품들을 전시가 끝나면 먼지로 사라지게 만들겠다니, 다른 작가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모두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고, 나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고, 모든 것은 천천히 소멸되는 중이다. 돌로 만든 석조 건축물도, 우리가 서 있는 이 땅도 나중에 사라질 것이고, 전시가 끝나면 없어지는 벽화는 그런 시간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VOGUE> 인터뷰)
그렇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것들은 장차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물며 수명이라는 삶의 유한성을 숙명으로 갖고 태어난 우리는 주어진 시간조차 짧다. 결국 나는 먼지로 돌아가게 갈 운명이다. 그러니 ‘더스트’는 벽화들의 주제가 아니라, 먼지로 돌아갈 나의 운명인 것이다.
"이제, 집착하지 말아요/ 영원한 것은 하늘과 땅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도 언젠가는 사라져요/ 그리고 돈으로도 단 1분도 살 수 없어요/ 바람 속의 먼지/ 우리는 모두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에요."
인생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삶 앞에 겸손하고, 삶의 소중함을 자각하며 의미 있게 살자는 얘기이다.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들이 얼마 후 먼지로 사라진다 해도 지금 너무도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유창선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