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없이 오로지 비주얼로 승부"… 칸이 찾는 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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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애니메이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지난 4일 부산 영화의극장서 상영한 '플로우'
칸 영화제도 주목한
라트비아 신예 감독 질발로디스 단독 인터뷰
월트 디즈니(1901~1966)의 말처럼 애니메이션의 미덕은 무궁무진한 표현력이 아닐까. 내용과 표현 방식에서 애니메이션 만이 지닌 특유의 자유로움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자아낸다. 최근 독보적인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있다. 칸 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으로 초청되고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플로우'(2024)의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30)다. 지난 4일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된 플로우는 혼자있는 걸 좋아하는 '개인주의자' 고양이가 거대한 홍수로 집을 잃고 다른 동물들과 함께 연대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날 한국을 찾은 질발로디스는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하다가 처음으로 팀과 작업하면서 겪은 경험을 고양이의 모습에 담았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질발로디스 감독은 그의 첫 장편 '어웨이'(2019)에서 모든 작업을 혼자 완성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즐겼다. 처음에는 넘치는 상상력을 영화로 담고자 했지만, 영화보다 상상과 표현의 범위가 훨씬 넓은 애니메이션에 끌리게 됐다고. 그는 "실사 영화를 만들려고 해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사이에서 한계를 느꼈다"며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라고 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든 설정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구체화할 수 있었어요. 이를테면 '플로우'에는 물이 많이 등장하고 카메라와 캐릭터의 동작이 매우 복잡해요, 그걸 또 동물들이 해야하죠. 실사로는 제작이 불가능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는 가능해요." 플로우는 우리에게 친숙한 픽사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와는 사뭇 다르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단순하지만 서정적이다. 숲, 물 같은 자연 풍경 묘사는 일본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상되기도 한다. 질발로디스는 플로우를 만들 때 색다른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털어놨다. 보편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처럼 손으로 그린 스토리보드를 활용해 제작하는 대신 3D 프로그램을 활용했다는 것. 그는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배경을 만들고 캐릭터를 배치해 버추얼 카메라로 탐색하면서 샷을 찾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플로우에서 카메라가 등장 인물을 따라가는 롱숏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 방법은 관객이 스토리와 배경 속에 들어간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하죠. 제 작품에서는 카메라가 계속해서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의 스토리보드 제작 방식으로 그려내기는 어려워요. "
플로우와 어웨이를 비롯해 그의 몇몇 단편에는 대사가 없다. 그는 대사를 생략하는 대신 움직임, 색감, 음악, 효과음 등 다른 시각적 도구를 활용했다. 그가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건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가 보다 순수한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에서다. "요즘에는 화면을 보지않고 대사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 시리즈물이 많아요. 그와 반대되는,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사가 아닌 다른 요소들을 통해 감정을 전달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창적이고 파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오래 전에 본 영화를 떠올리면 대사를 기억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미지와 감정을 기억합니다. 그런 점에 집중했어요." 그는 영화 음악 또한 대략적인 스케치를 하듯 본인이 먼저 만들어 놓는다. 장면에 어울리는 기존의 영화 음악을 임시로 넣어두고 작업하는 보편적인 방식 대신 본인이 직접 음악의 초안을 만드는 것이다. 플로우의 배경 음악에는 타악기, 스트링 등 다채로운 어쿠스틱 악기의 활용이 빛난다. 동물들의 생동감 있는 액션이 영화 음악과 마치 한 몸처럼 어우러진다.
"음악을 아주 일찍 쓰는 편입니다. 대본을 쓰는 동안에 시작할때도 있죠. 음악은 장면의 분위기와 속도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스토리 전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줘요. 작곡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제가 직접 만들면 영화와 더욱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요. 제가 대략 만들어 놓은 뒤 전문 작곡가 리하르트 자투페(Rihards Zaļupe)가 악보를 완성해줬어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질발로디스에게 자신의 작품, 나아가 애니메이션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보다 우아하게 나이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예전 애니메이션을 계속 보잖아요. 애니메이션에는 시대를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