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지금 이 순간'의 전설 프랭크 와일드혼이 온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대표작 3편 연달아 무대 올라

'지금 이 순간'으로 이름 알린
11월 29일부터 2025년 5월 21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고전 희곡 원작 재해석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12월 6일 개막

개막 후 한달 만에 10만 관객 모은
내년 1월 9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넘버(음악) '지금 이 순간'. 가슴 뭉클해지는 가사와 웅장한 멜로디 덕분에 결혼식 축가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지금 이 순간'에서 말하는 '소원'은 과연 무엇일까. 이 노래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주인공인 의사 지킬 박사가 인간의 인격을 둘로 나누는 위험천만한 약을 개발한다. 자기 자신에게 이 약을 실험하겠다는 비장한 다짐을 꽤 비극적이고 공포스러운 노래다.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결혼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선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사로잡은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중독성 강하고 단순한 멜로디. 이 노래를 만든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음악의 힘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 와일드혼의 손에서 태어난 <지킬 앤 하이드>, <시라노>, <웃는 남자>가 올 겨울 연달아 한국 관객을 만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프랭크 와일드혼은 클래식 음악, 뮤지컬, 가요계를 넘나들며 그래미, 토니상, 에미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른 작곡가다.

1958년에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혼자서 피아노를 배우며 작곡가라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여러 밴드를 위해 로큰롤,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썼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철학과 역사를 전공한 그는 한 번도 공식 음악 교육받지 않고도 작곡을 독학했다. 그의 대표작인 <지킬 앤 하이드>는 그가 대학생 시절 만든 작품이다.

40편이 넘는 뮤지컬에 참여해 1200곡이 넘는 곡을 썼다. 1999년에는 <지킬 앤 하이드>, <스칼렛 핌퍼넬>, <시빌 워>가 동시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세 개의 작품을 동시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최초의 미국 작곡가가 됐다. 이 세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는 흥행 면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한국 초연이 대성공하면서 한국 관객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가가 됐다.<지킬 앤 하이드>의 대성공 이후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곡가로 거듭났다. <드라큘라>, <몬테크리스토>, <웃는남자>까지 잇따라 성공하며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오고 있다.

일본 뮤지컬과의 인연도 깊다. 2015년에는 일본 최대 연예 기획사 '호리프로'와 함께 인기 만화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 <데스노트>를 제작해 일본과 한국에서 초대박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초연한 일본 뮤지컬 제작사 토호의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음악을 만들었다.

뮤지컬뿐 아니라 대중가요계에서도 활동했다. 케니 로저스, 휘트니 휴스턴을 포함한 가수들을 위한 곡을 썼다. 특히 그가 작곡한 휘트니 휴스턴의 'Where Do Broken Hearts Go'는 1988년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지금까지 휴스턴의 대표곡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작곡 활동을 했다. 그가 작곡한 <다뉴브 교향곡>은 빈 교향악단의 연주로 2021년 발매했다.

그가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로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 라인과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으로 꼽힌다. 와일드혼의 작품들은 서정적이면서도 대중가요처럼 듣기 편한 것이 특징이다. 사랑, 절망 등 강력한 감성을 그리는 노래가 많다. 특히 곡의 절정에서 고음 구간, 혹은 '내지르는' 전개가 많아 호소력이 짙다는 점이 한국 관객에게 통하는 요소로 꼽힌다.

'지금 이 순간'이 일군 전설, <지킬 앤 하이드>
지킬 앤 하이드는 프랭크혼의 이름을 한국 뮤지컬팬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킨 작품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지킬 박사는 아버지의 정신 분열을 치료하고자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약을 개발한다. 그는 이 신약을 자기 자신에게 실험하는 무모한 시도를 감행한다. 그 결과 지킬 박사 내면에는 순수하게 악한 '하이드씨'라는 새로운 자아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하이드씨가 모습을 드러날 때마다 런던의 거리는 공포에 휩싸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1990년 컨셉앨범으로 시작했다. 미국 각지에서 공연을 이어가다가 1997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이후 4년간 약 1500여회 공연을 열었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일본, 독일 등지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2004년 한국 초연 무대에 올랐다. 국내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논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했다. 논레플리카 방식은 음악, 안무, 의상 등 모든 요소들을 원작 그대로 유지하는 레플리카 뮤지컬과 달리 원작을 수정과 각색하는 방식의 라이선스 뮤지컬을 말한다.

한국 공연은 '초대박' 흥행을 달성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공연한 <지킬 앤 하이드> 초연에는 류정한, 조승우, 최정원, 김소현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주인공 지킬·하이드를 연기한 조승우가 2004년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10주년을 맞은 2014년에 열린 공연에서는 누적 관객 100만명을 달성해 명성황후, 캣츠,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5번째로 '밀리언셀러' 뮤지컬이 됐다. 이후 류정한, 홍광호, 양준모, 박은태 등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상징적인 역할이 됐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지킬 앤 하이드>는 누적 관객 180만명을 모았다. 이번 시즌도 예매 시작 10분 만에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식을 기세가 보이지 않는 작품.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11월 29일부터 내년 5월 21일까지 공연한다.

'거인을 데려와'라며 세상에 맞서는 추남, <시라노>
뮤지컬 <시라노>는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쓴 1897년 발표한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 사는 주인공 시라노는 뛰어난 검술과 언변을 겸비한 훌륭한 성품의 남자다. 그에게 단 한 가지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있는데, 코가 기형적으로 큰 추남이라는 점이다. 시라노는 록산이라는 여성을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흠모해왔지만자기 외모 때문에 고백을 망설인다.

그 와중에 록산은 시라노의 친구이자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크리스티안에게 사랑을 빠져 시라노를 찾아온다. 둘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길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록산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시라노의 도움으로 록산과 크리스티안의 관계는 깊어지지만, 시라노의 록산을 향한 사랑도 점점 짙어져 간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은 1897년 초연 무대에 올라 500회 넘게 공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과 영화로 재탄생했다. 한국에서도 이 원작을 모티브로 김현석 감독이 2010년 발표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27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와일드혼이 작곡한 뮤지컬 <시라노>는 과거 함께 <지킬 앤 하이드>를 만든 작사가 레슬리 브리커스와 합을 맞췄다. 2006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첫선을 보일 계획으로 제작됐지만, 공연이 취소된 이후 2009년 5월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 초연 무대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2017년 당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던 LG아트센터에서 처음 관객을 만났다. 2017년 초연에서 시라노로 분한 홍광호가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 2019년 재연에서 조형균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시라노>에서 가장 사랑받는 넘버는 바로 '거인을 데려와'. 주인공 시라노의 용맹한 성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넘버로, "저 하늘이 날 버려도, 이 육체가 소멸해도, 내 영혼만은 영원히 숨쉬리"와 같은 가슴 뭉클해지는 가사가 특징이다. 특유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힘찬 멜로디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오는 12월에는 세번째 시즌이 열린다. 이번 공연은 지난 2월 뮤지컬 제작사 'RG컴퍼니'를 출범하며 본격적으로 제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배우 류정한과 CJENM의 공동제작으로 개편된 작품이 오를 예정이다. 류정한은 2017년 초연 공연 당시 주인공 시라노역을 맡으면서 동시에 제작자로 데뷔한 바 있다. 주인공 시라노 역에는 조형균, 최재림, 고은성이 캐스팅됐다. ‘록산’ 역은 나하나, 김수연, 이지수가 분한다. 뮤지컬 <시라노>는 오는 12월 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다.

심봉사도 눈 뜨게 하는 넘버, <웃는 남자>의 '그 눈을 떠'
2025년 새해에 관객을 만나는 뮤지컬 <웃는 남자>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1869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배경은 17세기 영국. 당시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몸을 기형적으로 상처를 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활개를 치고 있었다. 주인공 그윈플렌 역시 이들에게 납치돼 마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기이하게 찢긴 입을 가지게 된다. 유랑극단을 꾸려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가 된 그는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지킬 앤 하이드>와 <시라노>와 달리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과거 뮤지컬 <마타하리>를 만든 경험이 있는 EMK뮤지컬컴퍼니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합작했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제작 단계부터 주인공 그윈플렌을 맡은 가수 박효신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8년 무대에 오른 초연에는 그윈플렌역에 박효신과 박강현을 포함해 민경아,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정선아에 이르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다. 개막 후에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10만명을 처음으로 달성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즈에서 올해의 뮤지컬상을 포함해 7관왕,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는 3관왕에 오를 정도로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았다. 세번째 시즌이 열린 2022년에는 가수 박효신의 3년 만에 첫 공식 활동으로 주목받아 티켓 예매 사이트의 서버가 다운되기까지 했다.
<웃는 남자>의 인기 비결은 역시 와일드혼의 음악. 특히 대표곡 '그 눈을 떠'는 높은 음역을 엄청난 성량과 함께 극장을 가득 채우는 노래로, 주연배우의 기량을 극한으로 시험하는 초고난도 명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커튼콜 때마다 팬서비스로 불러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래로 박효신, 박강현 등의 라이브 무대 영상이 많은 팬을 끌어모으는 계기가 됐다. 뮤지컬 <웃는남자>는 2025년 1월 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고전 문학 원작과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이 만난 3개 작품. CJENM, 오디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 등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제작사들의 색깔과 연출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겠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