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패해도 괜찮아"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
몇 년 전, 새로운 브랜드를 해보고 싶다는 구성원들의 의견이 있어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붙여줬는데 금액이 생각보다 꽤 컸다. “이 큰 금액을 들이고 실패하면 어쩌지?” 2억5000만원이라는 금액에 구성원들이 부담감을 가지고 주저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설령 실패해도 여러분은 남지 않겠습니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분이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그것만 남아도 회사는 괜찮으니 해보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의 역량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그렇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유별난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고운세상코스메틱의 수식어가 됐다.

이런 경영 철학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 뿌리는 12년 전 내 실패 경험에 있다. 당시 나는 30대 중반에 최연소 팀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임원 회의에 참석할 만큼 인정받았고, 늘 주목받는 주인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파생한 회사 손실의 책임을 지고 좌천돼 공장의 평사원이 됐다.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장비를 조립했다.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한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나에게만 비추며 살아왔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그저 나를 빛나게 하는 엑스트라일 뿐이었다.그 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3년간 존재감 없이 살았다. 매일 아침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출근했고, 가끔은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를 둔 외벌이 가장이었기에 견뎌야 했다. 3년간 1000여 권의 책을 읽으며 고통스럽게 나와 싸움을 해 나가던 중, 친구의 말이 큰 위안이 됐다. “주호야, 살아보니 과거는 미래에 의해 다시 쓰이더라.” 그 말대로였다. 실패라고 생각한 경험들이 오히려 나를 지금의 경영자로 만들어줬다.

고운세상에 출근한 첫날, 직원들의 낡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임원 연봉을 동결하고 그 돈으로 직원들 의자를 바꿔줬다. 매일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을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됐다. 소외된 이는 없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귀 기울였다. 우리 회사의 ‘실패해도 괜찮다’는 문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내가 겪은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밑거름이 된 것이다.

모든 일은 때가 돼 일어난다.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견디다 보면 그 시간을 지나온 자신이 대견하고 고마워질 때가 있다. 자의식과 에고를 내려놓으면 다시 날아오를 기회가 온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실패의 아픔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사회와 상사로부터의 낙인에서 벗어나 스스로 치유하라. 실패로부터 치유한 그 경험이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