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같은 사실, 달리 보기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언론 보도를 보면 ‘원전산업은 이미 오래전 사양산업이 됐다’는 주장이 간혹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보고서나 통계 자료는 동일한 사실을 두고도 보기에 따라 해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가령, ‘세계 원자력산업 현황보고서 2024’ 내용 중 스웨덴 사례가 인용되곤 한다. 이 보고서 작성자인 마이클 슈나이더와 앤서니 프로갓은 전형적인 반핵 활동가다. 보고서 작성을 후원한 하인리히뵐재단과 맥아더재단도 독일 녹색당 계열 단체다. 객관성이 검증된 국제기구나 정부출연연구소의 보고서가 아니다.스웨덴은 1985년에 마지막으로 원전을 건설하고 후속기 건설 없이 40년간 기존 원전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2003년에는 ‘탈원전 폐기’를 선언했고, 지난달에는 스웨덴 총리가 2026년 이전 신규 원전 건설 시작을 발표했다. ‘탈원전’에서 ‘복원전’으로 돌아선 것이다. 스웨덴이 복원전을 하는 이유는 화석에너지 소비를 청정전기로 전환하기 위해 원전 발전량을 두 배로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두고 원전 비판자들은 ‘스웨덴은 원전산업 기반이 없다’거나 ‘신규 원전이 전력 생산을 시작하는 시기(2035년께)는 탄소중립에 필요한 시간의 절반이 지났을 때’라는 식으로 해석해 인용한다.

그들은 탈원전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 그런데도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 건설을 하기로 한 당위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이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로 분류한 데 이어 유럽 여러 국가에서 신규 원전 발주가 일고 있다.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이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스웨덴 외에 이탈리아, 스위스도 신규 원전 건설 추진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아마존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도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원전 비판자들은 세계원자력협회가 지난 8월 ‘제안된 원전’을 344기로 집계한 결과를 두고 원전의 미래 수요를 최대로 부풀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18년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와 2023년 COP28(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도 2050년 원전산업이 현재의 3~5배는 돼야 한다고 전망했다. 344기는 현재 가동되는 원전에도 못 미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건설이 주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력 수요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또 무탄소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의 가치가 상실된 것도 아니다. 앞으로 원전 건설이 둔화할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시장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준공 기간을 준수해 예산 내에 원전 건설을 수행하는 한국에는 더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폄훼를 목적으로 사실을 호도해도 언젠가는 진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