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 진원지 HBM '수술대' 올려…조직·사람·문화 싹 바꾼다

경쟁력 약화에 충격 요법…고강도 감사

반전 계기 절실한 메모리사업
HBM·AI 반도체 실패 원인 분석
신상필벌·경쟁력 강화 해법 모색

'삼성 정신' 회복에 방점
DS 임원수 438명…전체의 38%
하이닉스의 2배 넘어 효율성 뚝
임원 감축·조직 개편 뒤따를 듯
"밑바닥부터 다시" 기업문화 쇄신
“반성문의 행간을 읽으면 향후 삼성전자의 행보가 보인다. 조직, 사람, 문화 등 반도체 부문을 완전히 쇄신하겠다는 얘기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이 지난 8일 고객과 투자자, 임직원에게 보낸 반성문 성격의 서신에 대해 삼성 고위 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사령탑이 ‘위기’란 단어를 네 차례나 반복하며 경쟁력 하락을 인정하고, 재도약 각오를 밝힌 만큼 고강도 쇄신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그 출발점을 ‘삼성 위기론’의 진원지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사업에 대한 고강도 경영진단(감사)으로 잡았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이 나온다고 본 것이다. 삼성 안팎에선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가 첨단 제품에서 2~3위에 밀린 이유부터 찾는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쇄신 작업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부가가치 메모리 강화 주력

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DS부문 메모리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은 감사를 경영진단으로 부른다. 단순히 누가 잘못했는지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의 문제점을 분석한 뒤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삼성전자는 경영진단을 통해 4·5세대 HBM(HBM3·HBM3E) 제품 경쟁력이 떨어진 원인을 찾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4세대 제품인 HBM3 8단 제품을 일부 납품하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이은 ‘3차 공급사’에 머무르고 있다. 최신 5세대 제품인 HBM3E는 8단과 12단 제품 모두 ‘품질 테스트’ 중이다. 최근 엔비디아 담당자들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HBM 라인을 점검했지만, 납품에 성공해도 물량은 소량에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8단을 납품하기 시작한 데 이어 4분기 중 12단도 공급한다.최첨단 범용 제품 경쟁력도 의심받고 있다. 최신 규격인 DDR5 D램과 5세대 10나노미터(㎚) D램인 ‘D1B’가 그런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서버용 D램과 전자기기에서 자체 가동하는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용 D램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경영진단 과정에서 메스를 들이댈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고강도 감사가 필요할 정도로 삼성의 D램 경쟁력이 추락한 상태”라며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원 줄여 조직 효율성 높인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인사를 통한 조직 분위기 쇄신도 단행할 계획이다. 연말 인사에서 DS 부문 임원을 상당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2분기 사업보고서 기준 삼성전자 DS 부문 임원은 438명으로 전체 임원(1164명)의 38% 수준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199명)보다 2배 이상 많다.

2017~2018년 반도체 슈퍼호황 때 임원을 대거 발탁한 데다 시스템반도체(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사업)를 키우면서 파운드리와 팹리스 임원을 여럿 영입한 여파다. 삼성의 반도체 경쟁력이 의심받기 시작한 2022년과 2023년에도 눈에 띄는 임원 감축은 없었다.하지만 조직 효율성을 끌어올리려면 임원을 줄여야 한다는 삼성 안팎의 지적에 따라 이번에는 칼을 빼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인사를 통해 DS부문 산하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등 3개 사업부 수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 제조&기술담당 등 5명의 사장단 진용에 변화를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경영진단과 대규모 인사가 끝나는 대로 가라앉은 조직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적재적소에 능력을 갖춘 임원과 엔지니어들을 배치해야 근원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김정회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삼성의 반전을 위해선 조직 분위기부터 확 바뀌어야 한다”며 “밑바닥부터 ‘다시 해보자’는 의지가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