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월급 한 방에 200만원 뛰었다…수상한 24세 대학생 직원 [혈세 누수 탐지기⑭]

公기관의 '자격 미달' 용역

58억원 국비 들여 용역 준 산단公
직원 자격 미달인데 사업자 선정
평균 연봉 상승률 17% '잔칫집'
한국산업단지공단 본사 전경. /사진=산단공
'대학교 재학 중'인데…최종학력 '학사'.

혈세 58억원을 받고 국가사업을 대신 수행하는 용역업체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의 이력서 내용입니다. 24세의 나이로 대학교 재학 중인데도 최종학력을 학사로, 사업 유사 경력은 3년이라고 써두었습니다. '거짓 이력서'였습니다. 또 일부 직원은 사업 참여의 자격 요건도 채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거짓 이력서를 제출하고, 요건도 안 갖춘 직원들로 구성된 자격 미달의 이 업체가 어떻게 국가사업을 따냈는지 의문입니다. 올해 이곳 직원들의 평균 연봉 상승률은 17%, 많이 오른 직원은 42%까지 올랐답니다. 어떤 직원은 연봉이 1년에 2400만원씩이나 올랐습니다. 사장님의 통 크고 파격적인 연봉 인상은 우리 세금으로 이뤄졌습니다.'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데 바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과 협업해 산단공의 혈세 누수 현장을 들여다봤습니다.

58억 사업 검증도 제대로 안 하고
…민간에 통째로 맡긴 산단공

한국산업단지공단 본사 전경. /사진=산단공
산단공은 생산·제조 기업이 필요한 업체와 생산·제조 기업 간의 연결을 돕는 '제조거래센터'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과 제조 공장을 연결해 기업간거래(B2B) 거래를 지원하는 형태입니다. 제품 제작을 희망하는 스타트업 등 '수요기업'이 제조를 요청하면 부품공장 등 제조기업 중 조건이 맞는 업체를 찾아 중개해줍니다. 제조 수요와 공급 기업의 발굴을 동시에 확대하겠다는 게 이 사업이 추진된 목적입니다.산단공은 제조거래센터 운영을 직접 하지 않고 샤플(SHAPL)이라는 업체와 '스마트산단 B2B 제조거래센터 위탁운영 용역' 계약을 체결합니다. 첫 계약은 2021년 2억9300만원 규모로 맺었고, 2022년에도 6억9800만원에 전담했습니다. 이어 2023년 4월부터 2024년 올해 말까지 2년간 제조거래센터 전담 수행기관에 선정돼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년간 58억원, 사업 수행직원 17명으로, 작은 규모의 공공기관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자격 확인도 없이 사업자 선정

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제조거래센터 운영 사업안내서'
산단공은 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인력의 '자격요건'을 마련해두었는데, △제조·창업 관련 컨설팅 경력이 2년 이상인 자 △대학 이상의 과정 이수 후 제조 및 기업지원 컨설팅 분야 경력이 5년 이상인 자 △기술사, 경영지도사 또는 기술지도사, 기술거래사 등록증 소지자 등입니다.요건을 충족하는 인력은 책임연구원급, 연구원급, 연구보조원급으로 구분하게 했습니다. 이때 구분하는 기준인 '적용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보조원급으로 배정되려면 '전문대학 이상의 과정 이수자'여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자격요건을 모두 충족한 전문대학 이상의 과정 이수자'여야 연구보조원급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근무 중인 직원 중에서 대학생이 발견됐습니다. 자격증은 소지할 수는 있지만 대학 재학생이 2년 이상의 제조·창업 컨설팅 경력을 가졌을까요. 의구심이 듭니다.

산단공은 현재 대학생인 A직원이 '전문대학 과정 이수자'라는 이유로 자격요건을 갖췄다고 오판했습니다. 자격요건과 적용기준을 헷갈린 것입니다. 산단공은 관련 문제 제기에 처음에는 A직원의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제출했다가, 결국 "지적하신 바와 같이 자격요건에 있어 부족해 보이며, 자격요건이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되는 참여 인력에 대해 관련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시인했습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자격요건과 적용기준을 혼동해 자격이 있다(O)고 답변한 제출 자료. /사진=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
업체는 A직원이 대학교 재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최종학력 학사, 사업 유사 경력 3년"이라고 기재했습니다.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1명의 직원도 자격에 문제가 없다던 산단공은 끝내 총 4명의 직원의 자격이 충족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김 의원은 "이외에도 직원 상당수 경력이 부풀려져 있고,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사업 시작 자체가 부실했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무원 보수 인상률 2.5%인데
…세금으로 평균 연봉 상승률 17%

58억원 국비를 지원받은 샤플의 파격적인 연봉 상승률도 눈에 띕니다. 2년 통합 계약인 이 사업에 2년 연속 참여한 직원들의 연봉 인상률은 평균 17%였습니다. 올해 공무원 보수 인상률(2.5%)의 약 7배에 달합니다. 심지어 42%, 37% 인상된 직원들도 있었는데요. 월급이 200만원, 140만원씩 오른 겁니다.

이런 '파격 인상'이 가능했던 건 산업공단이 용역 공고를 낼 때 만든 지침 때문입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1년 사업비 29억원의 40% 이상만 시제품 제작·마케팅 등의 직접 지원비로 사용하라는 규정만 있고, 인건비·일반 수용비·회의비 등의 비용은 60% 이내에서 사용하라는 사업비 편성 조건만 있습니다. 결국 이 규정 때문에 2023년에 29%였던 인건비 비율이 2024년 46%로 급상승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산단공이 개인 사업체였다면 58억원이라는 돈을 자격 미달인 사람들에게 인건비로 펑펑 쓰게 방치해두었을까요.

"산단공이 왜 이런 사업을 해?"

샤플과 같은 온라인제조플랫폼 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업자는 "산단공이 이런 사업을 왜 하는지 궁금했다"고 의문을 표했습니다. 제조거래센터 전담 수행기관 선정 사업은 설계부터 관리까지 모두 잘못됐다는 지적이 관련 업계에서 나오는 겁니다.

산단공의 사업과 흡사한 형태의 사업이 한국디자인진흥원에 있습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제조 기반이 없는 수요기업이 샤플과 같은 온라인제조플랫폼을 통해 생산 전문기업을 연결하고 지원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 직원을 두는 것 외에는 제조거래센터와 아주 유사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은 검증된 온라인제조플랫폼을 다수 (5~7개 사) 선정해 이들의 경쟁을 유도하고, 인건비를 총사업비의 15% 이내로 규정해 과도한 인건비 남용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인건비로 사업비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퍼붓는 산단공의 사업과 명확히 비교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국가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면서 "공공 차원에서 거래 플랫폼은 필요하겠지만 여기저기 생기면서 모니터링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적정 수준에서 세금이 올바로 쓰일 수 있게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인 이야기에는 로마 시대 때 베네치아가 번성한 이유 중 하나로 세금 낭비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온다"라면서 "국가 번영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세금 낭비라는 것을 기관들과 공무원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우리 기업의 산업활동을 지원하는 산단공은 홈페이지를 통해 핵심 가치로 "투명한 소통과 탁월한 전문성으로 국민이 공감하고 신뢰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며 '신뢰'를, 경영방침에는 "경영혁신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민이 신뢰하는 청렴하고 공정한 책임경영 실천"이라고 적어놨습니다. 홈페이지를 바꾸든지, 내세운 가치를 실현하든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홍민성/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