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소리에도 인왕제색도 같은 '여백의 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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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코난의 맛있는 오디오시간이 날 때면 전시나 공연을 다닌다. 코로나 이후 참고 참았던 야외 활동 중에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이 아마도 이런 문화 예술 관련 행사였을 테다. 올해는 다행히 여러 공연과 전시회를 다녔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면 얼마 전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슈타츠카펠레의 브람스 교향곡 연주였다. 바렌보임이 오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근심을 뒤로 하고 대신 지휘봉을 잡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천의무봉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음향 '여백의 미'는 우리 귀에 맑게 스며들지
하나 더 기억나는 것은 아무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A Collector’s Invitation)였다.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컬렉션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이 전시는 수많은 인파를 박물관으로 모이게 했다. 특히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선 보기 힘든, 매우 다양한 그림들이 시선을 끌었다. 한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컬렉션하기보다는 도예, 조각,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 알토란같은 작품들이 빼곡했다.
![정선필 인왕제색도 / 그림출처. © 국가유산청](https://img.hankyung.com/photo/202410/01.38266805.1.jpg)
빛과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당시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조금 다른 견지에서 실체를 해석했다. 소실점을 중심으로 현실의 시선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을 여러 개로 나누어 산과 집이 서로 다른 입체로 만난다. 산 정상 쪽은 마치 아래에서 쳐다보는 듯하고 산 아랫부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의 불일치.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안개는 눈앞의 실체를 꿈같은 상상의 공간으로 전이시킨다.
나는 종종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음악을 재생하면서 여백의 미, 그것도 ‘인왕제색도’를 떠올릴 정도의 여백을 경험하곤 한다. 모든 공간을 물감으로 빼곡히 채워 넣은 것과 달리 아무런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워낸 공간이 주는 힘 말이다. 하지만 여러 한국화에서 그 여백은 사실 역설적으로 사물이나 경치를 표현할 때 종종 묵언의 표현이나 다름 아니었다. ‘인왕제색도’에서 그 텅 빈 공간으로 표현된 안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봉우리를 가뿐히 떠받쳐 보다 선명한 정취를 보여주었다. 그렇듯 때로 새하얀 무색무취의 음향의 공허는 소리 입자를 귀에 맑게 스며들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여백의 힘은 단순히 높은 S/N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히 신호가 잡음 대비 높은 비율을 가진다고 해도 청감은 그렇게 공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청감상 S/N’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신호 자체의 충실도가 좋아야 한다. 이는 왜곡률과도 일부 연관이 된다. 이를 오디오에선 별도로 THD(Total Harmonics Distortion), 즉 전고조파 왜곡이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신호와 잡음의 비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조파, 즉 배음 측면에서 왜곡이 일어날 때 소리는 본래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 등 모든 소리의 음색이 왜곡되어 본래 소리로부터 멀어진다. 이 또한 원래 소리의 순도를 떨어트려 순도를 해친다.
하지만 스펙만 높다고 해서 여백의 표현이, 소리의 순도와 그 녹음 현장의 소리가 생생하게 그려질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느 정도 이상의 스펙을 만족한 이상 그 이후의 소리에 대해 인간이 인지하는 소리의 형태에 대해선 대단히 다양한 지표들이 영향을 준다. 번개처럼 쿵~하고 어택이 가해져 깜짝 놀랐다가 이후 최고점을 찍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소리의 표현은 S/N비나 고조파 왜곡 외에 또 다른 인지 패턴에 의한 결과로 추측될 뿐이다. 아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이는 더 이상 공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음향 인지, 음향 심리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억원대 카르마 스피커에 박힌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무려 90kHz까지 주파수 응답을 갖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더 좋은 스펙의 앰프들보다 약간 화이트 노이즈가 있는 다즐 앰프에서 적막한 배경과 순도 높은 음악적 표현력이 빛을 발했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