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소리에도 인왕제색도 같은 '여백의 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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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코난의 맛있는 오디오시간이 날 때면 전시나 공연을 다닌다. 코로나 이후 참고 참았던 야외 활동 중에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이 아마도 이런 문화 예술 관련 행사였을 테다. 올해는 다행히 여러 공연과 전시회를 다녔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면 얼마 전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슈타츠카펠레의 브람스 교향곡 연주였다. 바렌보임이 오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근심을 뒤로 하고 대신 지휘봉을 잡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천의무봉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음향 '여백의 미'는 우리 귀에 맑게 스며들지
하나 더 기억나는 것은 아무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A Collector’s Invitation)였다.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컬렉션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이 전시는 수많은 인파를 박물관으로 모이게 했다. 특히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선 보기 힘든, 매우 다양한 그림들이 시선을 끌었다. 한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컬렉션하기보다는 도예, 조각,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 알토란같은 작품들이 빼곡했다.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아니었을까?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 그림이 여러 서양화 사이에서 유독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른 서양화가의 작품들은 빛과 그 빛으로 인해 비추어내는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검은 묵으로 그린 인왕제색도가 더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묵직한 선과 붓의 힘은 농묵의 강직한 무게감으로 드러나 있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산을 휘감고 있는 안개가 여백으로 치환되었음에도 그 여백은 봉우리를 가볍게 떠받치고 있는 듯 신비로웠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당시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조금 다른 견지에서 실체를 해석했다. 소실점을 중심으로 현실의 시선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을 여러 개로 나누어 산과 집이 서로 다른 입체로 만난다. 산 정상 쪽은 마치 아래에서 쳐다보는 듯하고 산 아랫부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의 불일치.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안개는 눈앞의 실체를 꿈같은 상상의 공간으로 전이시킨다.
나는 종종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음악을 재생하면서 여백의 미, 그것도 ‘인왕제색도’를 떠올릴 정도의 여백을 경험하곤 한다. 모든 공간을 물감으로 빼곡히 채워 넣은 것과 달리 아무런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워낸 공간이 주는 힘 말이다. 하지만 여러 한국화에서 그 여백은 사실 역설적으로 사물이나 경치를 표현할 때 종종 묵언의 표현이나 다름 아니었다. ‘인왕제색도’에서 그 텅 빈 공간으로 표현된 안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봉우리를 가뿐히 떠받쳐 보다 선명한 정취를 보여주었다. 그렇듯 때로 새하얀 무색무취의 음향의 공허는 소리 입자를 귀에 맑게 스며들게 만들곤 했다.음향적으로 이러한 여백의 힘을 느끼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일단 S/N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아래 그림을 보면 S/N 비를 직사각형 영역에 대해 dB로 표기하고 있다. 우선 S/N비란 과학, 공학 계통에서 신호 대비 잡음비를 나타내는 척도로써 사용한다. 더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신호 레벨을 잡음 레벨로 나눈 비율로서 그 값이 어쨌든 클수록 잡음이 없어 깨끗한 신호를 청취할 수 있다. 통신, 오디오, 레이더, 이미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S/N는 상당히 중요한 매개변수로서 신호의 강도만 높은 게 아니라 얼마만큼의 노이즈를 함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여백의 힘은 단순히 높은 S/N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히 신호가 잡음 대비 높은 비율을 가진다고 해도 청감은 그렇게 공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청감상 S/N’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신호 자체의 충실도가 좋아야 한다. 이는 왜곡률과도 일부 연관이 된다. 이를 오디오에선 별도로 THD(Total Harmonics Distortion), 즉 전고조파 왜곡이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신호와 잡음의 비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조파, 즉 배음 측면에서 왜곡이 일어날 때 소리는 본래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 등 모든 소리의 음색이 왜곡되어 본래 소리로부터 멀어진다. 이 또한 원래 소리의 순도를 떨어트려 순도를 해친다.전고조파 왜곡을 줄이려 많은 앰프 메이커들은 네거티브 피드백이라는 되먹임 회로를 만들어 사용해 고조파 왜곡은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본래 입력된 소리의 싱싱한 생동감은 반대로 잃어버리기 일쑤였다.현대로 오면서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일체의 피드백을 사용하지 않는 게 보편화되었고 입력단에 이른바 커플링 커패시터도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 소리의 순도를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전고조파 왜곡은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을 만큼 소자 및 회로 설계 기술을 진보시켰다. 최근 퓨리파이 클래스 D 증폭 모듈 혹은 ESS 테크놀로지 및 아사히 카세이 DAC 칩셋의 SN비나 전고조파 왜곡률을 보면 과거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수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스펙만 높다고 해서 여백의 표현이, 소리의 순도와 그 녹음 현장의 소리가 생생하게 그려질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느 정도 이상의 스펙을 만족한 이상 그 이후의 소리에 대해 인간이 인지하는 소리의 형태에 대해선 대단히 다양한 지표들이 영향을 준다. 번개처럼 쿵~하고 어택이 가해져 깜짝 놀랐다가 이후 최고점을 찍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소리의 표현은 S/N비나 고조파 왜곡 외에 또 다른 인지 패턴에 의한 결과로 추측될 뿐이다. 아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이는 더 이상 공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음향 인지, 음향 심리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음악과 오디오를 경험하며 음향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조망하고 분석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다 보면 공학적으로 청감상으로 그리고 지금 이 글처럼 조금은 미학적으로 다양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를테면 최신 수억원대 DAC보다 되레 스펙은 조금 떨어지는 일본의 바쿤 DAC가 청감상 여백의 힘이 잘 느껴지곤 한다.최근에 충격받은 건 바워스&윌킨스(B&W)의 Nautilus였다. 같은 브랜드의 최신형 레퍼런스 라인업인 800 다이아몬드 시리즈가 훨씬 더 향상된 드라이버 성능과 스펙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설계를 그대로 간직한 Nautilus에서 더 선연한 순도를 경험했다.
수억원대 카르마 스피커에 박힌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무려 90kHz까지 주파수 응답을 갖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더 좋은 스펙의 앰프들보다 약간 화이트 노이즈가 있는 다즐 앰프에서 적막한 배경과 순도 높은 음악적 표현력이 빛을 발했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코난 오디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