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이커 "AI가 세상에 없는 단백질 제조…난치병 극복"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
베이커 교수 특별인터뷰

AI 플랫폼 영역 '무궁무진'
신소재 개발하는데도 활용
신약 개발 기간 절반으로
< 단백질 구조 설명하는 베이커 교수 > 9일(현지시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단백질 구조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고 세상에 없는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플랫폼 ‘로제타폴드’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AFP연합뉴스
“단백질 설계 기술은 난치병 신약은 물론 신소재, 바이오 센서 등에 두루 활용돼 산업 전반에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생화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 언론 최초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인공적인 단백질 설계 기술의 가능성을 이같이 내다봤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인공지능(AI) 플랫폼 ‘로제타폴드’를 개발한 공로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노벨화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AI 설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지난 3월 공개된 로제타폴드 최신 버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난치병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설계 기술이 가져올 미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난 9일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밝힌 수상 소감을 통해서다. 그는 “단백질 설계는 인류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분야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단백질 구조는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그동안 인류에게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년 이상의 기간과 수조원의 비용이 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베이커 교수, 허사비스 CEO 등의 연구 성과 덕분에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최근 급변하고 있다. AI가 신약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해서다.베이커 교수는 AI가 제약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로제타폴드를 통해 항바이러스제,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을 1490만 개 만들어냈다”고 했다. 기존 제약사에서는 수십 년이 걸려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풀어낸 셈이다.

"AI 신약개발은 상상할 수 없는 혁신…후보물질 1490만개 발굴"
AI '단백질 설계' 영역까지 진화…신약 개발 과정서 적극적 활용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9일(현지시간) 시애틀 연구실에서 노벨화학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올해 단백질을 설계하는 인공지능(AI) 플랫폼 ‘로제타폴드’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AFP 연합뉴스
올해 노벨화학상 주인공 ‘로제타폴드’가 탄생한 미국 워싱턴대 단백질디자인연구소(IPD) 입구에는 알록달록한 분자 모형이 전시돼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의 화학구조 모형이다. 모더나, 화이자 등에서 만든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보다 출시가 늦어져 코로나19 퇴치에 크게 공헌하지는 못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승인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생화학과 교수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로 설계해 개발한 백신”이라며 “연구소의 대표 성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베이커 교수는 지금까지 640편 이상의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100건 이상의 특허를 받은 단백질 설계 분야 석학이다. 그에게서 인공지능(AI) 신약개발의 전망과 과제에 대해 들었다.▷AI로 약을 개발하는 시대가 도래한 건가요.

“세 번째 버전 격인 ‘로제타폴드 올 아톰’을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습니다. 두 달 뒤 공개된 알파폴드3와 비슷한 플랫폼이죠. 이전에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그쳤다면 올해 발표한 플랫폼은 원하는 단백질을 설계하는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또 이전에는 단백질 간 상호작용만 예측했다면 이제는 단백질과 다른 분자(약물)와의 결합까지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실제 약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흑백 TV가 컬러 TV로 바뀌는 것만큼 놀라운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개발이 얼마나 빨라진 건가요.“로제타폴드 올 아톰을 기반으로 항바이러스제,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 1490만 개를 생성해 공개했습니다. 모두 현존하지 않는 구조의 단백질입니다. 세상에 없던 신약 후보군을 크게 늘린 성과입니다. ‘X선 크리스탈로그래피’ ‘극저온 전자현미경’ 등 여러 훈련 데이터를 추가해 로제타폴드 초기 버전에 비해 예측 정확도가 열 배 이상으로 향상됐습니다.”

▷성능은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최근에는 ‘RF디퓨전’ ‘RF항체’ 등 로제타폴드 올 아톰을 기반으로 항체나 단백질 신약을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도 공개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형태라도 원하는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어 신약 후보물질의 범주를 끌어올린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창업한 자이라테라퓨틱스는 올해 4월 분사 당시 시드 투자로 1300억원을 유치해 주목받았습니다. 바이오 기업은 물론 AI 기반 기업으로도 이례적인 규모죠.”

▷이름을 로제타폴드로 지은 이유는 뭡니까.

“기원전 196년 고대 이집트에서 만든 비석 ‘로제타스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언어학자들이 여러 언어로 된 텍스트를 비교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했죠. 로제타폴드는 아미노산 서열을 기반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단백질 구조를 번역하는 프로그램입니다.”

▷AI로 만든 약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다만 아직은 전통적인 신약개발과 마찬가지로 약물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수의 임상 결과를 통해 AI 플랫폼으로 설계한 신약의 안전성이 점차 검증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항암제 등을 개발해 인체에 투여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로제타폴드의 대표 성과를 소개해 주십시오.

“SK바이오사이언스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에 결합하는 나노입자 60개를 컴퓨터로 설계했고, 그중 항체 반응을 가장 잘 유도하는 단백질을 선별했습니다. 모든 게 코로나19 초기 몇 달 안에 가능했습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는 이후에도 범용 백신, 비강형 스프레이 백신 등을 개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항암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백신 등을 개발했고 현재 임상 단계에 있습니다.”

▷10년 뒤 제약산업은 어떻게 바뀔까요.

“AI가 결합된 제약산업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2년 뒤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신약개발은 크게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 시험, 임상시험으로 나뉩니다. 로제타폴드는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죠. 신약개발 과정 중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건 임상시험인데 이를 대체하는 건 요원한 일입니다. AI가 학습해야 할 데이터가 여전히 많죠. 아직 임상 분야에서는 환자군을 선별하거나 임상 설계에만 활용하는 이유죠.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약이 아닌 다른 곳에도 활용 가능합니까.

“자연에서 단백질이 하는 역할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합니다. 로제타폴드는 기본적으로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는 도구인 만큼 화학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산업용 효소, 인공광합성, 바이오 센서 및 소재, 나노 기술 전반에 활용할 수 있어요. 일례로 단백질디자인연구소에서 2022년 분사한 모노드 바이오는 단백질 기반 발광 바이오센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시드 투자로만 336억원을 유치할 정도로 주목받았죠.”

▷완전히 새로운 소재를 만들 수도 있나요.

“최근 제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입니다. 광물 특성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죠. 예컨대 인공적으로 합성한 단백질로 탄산칼슘의 화학적 성질을 조절해 차세대 하이브리드 소재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온갖 새로운 재료를 제조할 수 있다는 의미죠.”

▷원하는 물질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세포는 에너지원(ATP)을 연료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기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를 설계하듯 목적에 맞는 단백질을 합성해 쓰는 시대가 올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화학 반응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촉매 설계 연구를 하고 있어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환경오염, 뇌질환 등 21세기 현대사회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2017년엔 로제타폴드를 활용해 펜타닐을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지만 유용한 기술을 개발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입니다.”

○프로필△1962년 미국 시애틀 출생
△1984년 하버드대 생물학과 졸업
△1989년 UC버클리 생화학 박사 학위
△1993년 워싱턴대 생화학과 교수
△2021년 브레이크스루상 수상
△2024년 5월 타임지 선정 헬스케어 분야 100인
△2024년 10월 노벨화학상 수상

시애틀=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