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대표작 10선… 처절하되 담담하고, 어둡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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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한강의 대표작 10선한강의 문장은 시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내용은 늘 처절하고 어둡다. 그의 인물들은 떠나고 방황하며 추락한다. 그러면서 담담히 인생을 견딘다. 그저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한강이 그려내는 삶이 슬프면서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채식주의 딸을 버리는 가족들
제주 4·3 사건 희생자 등 그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한강을 발굴한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물었다. “그녀는 왜 삶의 치욕들을 헤집어, 그들의 고통스러운 운명을 잔인하게 우리 앞에 던져주는가”라고. 한강은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답하는 듯하다. 그 어느 약한 존재와도 ‘작별하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붉은 닻>(1994)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등단작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수록됐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는 술에 의지해 살다 죽었다. 남은 두 아들과 모친의 관계는 서서히 갈라진다. 오랜만에 서해안을 찾은 세 모자는 바다에 방치된 채 녹슬어가는 붉은 닻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 <아기부처>(1999)
주인공 최선희는 최근 정체 모를 꿈에 시달린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아기부처가 등장하는 꿈이다. 남편이 젊은 여성과 외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악몽이 거세진다. 선희는 자기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꿈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괴롭지만, 선희는 남편의 배신을 담담하게 수용한다.○ <검은 사슴>(1998)
잡지사에서 일하는 인영은 의선이라는 여자와 동거하게 된다. 어느 날 의선은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거리를 뛰어다닌다. 작가는 의선 등 인물들의 모습을 검은 사슴에 빗댄다. 어둠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지만, 이들은 그럴수록 심연으로 추락한다.○ <몽고반점>(2004)
주인공은 아내가 처제(영혜) 몸에서 몽고반점을 봤다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흥분에 빠진다. 식물 같은 삶을 갈망하던 영혜도 형부와의 결합이 싫지 않다. 결국 둘은 도덕적인 금기를 깨고 사랑을 나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남편을 경멸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채식주의자>(2007)
‘몽고반점’과 ‘채식주의자’ ‘나무 불꽃’ 등 단편 3편의 이야기가 연결된 연작소설이다. 이중 ‘채식주의자’는 몽고반점을 가진 영혜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는 악몽을 꾸게 된 그는 채식을 선언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그의 가족은 영혜를 버린다.○ <바람이 분다, 가라>(2010)
친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정희는 어느 날 친구 인주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세간에선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하고,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한 젊은 여성 화가의 죽음으로 신화화하고자 한다. 정희는 인주를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고자 나선다.○ <흰>(2016)
절대 더럽힐 수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각설탕과 입김, 파도, 백지, 수의 등 흰 대상으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주인공한테는 본인이 태어나기 전 출생하자마자 세상을 떠난 언니의 사연이 있다. 그는 언니의 못다 이룬 삶을 통해 세상의 흰 것들을 다시 만난다.○ <희랍어 시간> (2011)
말을 할 수 없게 된 젊은 여성이 시력을 잃어가는 고대 그리스어 선생님과 만난다. 주인공 여자는 침묵 속에서 자기 내면을 마주한다. 세상의 빛을 잃어가는 남자는 어둠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실을 본다. 둘은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소년이 온다>(2014)
작가가 본인의 고향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활용했다. 작품은 총 6장에 걸쳐 진행되는데, 장마다 화자가 다르다. 친구를 찾아 시체안치소를 찾은 동호, 옆구리에 총을 맞고 혼령이 된 정대, 살아남았지만 고문을 당하는 이들의 시선에서 참혹했던 그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
제주 4·3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경하는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제주도에 있는 그의 집을 찾는다. 경하는 그곳에서 인선의 환상과 마주한다. 인선의 모친 정심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족이었다. 경하는 인선과 정심이 수집한 기록을 보면서 현대사의 아픔을 실감한다.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