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 대선과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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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우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두 미국 대선 후보의 기후변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생각은 중요하다. 기후와 ESG는 산업, 국제통상, 금융 등 차기 정권의 정책을 지배하는 상위 통치 철학이기 때문이다. 한국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산업의 명운도 달려 있다.
우선 화석연료. 트럼프 후보는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사기라고 일축한다. 석유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모아 놓고 당선 후 석탄·원유에 대한 생산 규제를 없앨 테니 선거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해리스 후보는 과거에는 친환경 노선이었으나, 최근에는 톤을 낮추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달 후보토론회 중 해리스가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 내 화석연료 생산이 최대치가 됐다고 자랑한 것이다. 친환경 기치의 이면에서 화석연료를 확대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주목해야 한다.바이든 산업정책의 핵심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어떻게 될까. 친환경 투자와 전기차 등 기후 관련 산업을 육성해 미국 경제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IRA는 해리스 당선 시 지속이 유력하다. 반대로 트럼프는 IRA를 반대, 집권 후 전기차 지원 등 바이든의 기후 대응 관련 정책 대부분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당선 시 그간 IRA 지원책에 따라 미국 생산 투자를 준비하고 있던 국내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에 불확실성이 커진다.
중국과의 기후변화 관련 통상무역도 중요하다. 해리스는 미국 내 제조업 보호를 위해 중국산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당선되자마자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ESG 공시 규제다. 기업이 ESG 성적을 재무제표와 같이 주주들에게 공시하라는 것이다. 불성실 공시 기업에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공시 규제는 도입 한 달 만에 25개 주와 기업들의 소송으로 정지 상태가 됐다. 트럼프는 당선 즉시 담당 기구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을 해임한다고 벼르고 있다. 해리스가 당선돼도 사안이 소송으로 번져 마찬가지로 규제 폐기가 예상된다. 공화당 위주의 연방대법원 구성을 고려할 때 그렇다.
미국 ESG 공시제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기 폐업하는 사태의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규제의 완력을 통해 ESG를 공시하게 하고 기업에 법적 책임을 지우는 접근방식이 문제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기업에 발표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공익에 반한다는 미국 소송의 논거를 우리 금융당국은 새겨들어야 한다. 확실치도 않은 정보를 주주에게 제공하기 위해 기업이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면 이를 좋아하는 주주가 있을지 의문이다. 논란이 되는 국내 ESG 공시 규제가 우리 증시 밸류업이 아닌 밸류다운으로 가는 길이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