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 감사…난 한국문학과 함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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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밝힌 한강“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7분동안 '놀랐다'만 5번 반복
"제 소설 처음 읽는 분이라면
부터 시작하길"
父 한승원 "강이한테 노벨상 준 건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사고 친 것"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이 처음으로 공식 반응을 내놨다. 그는 11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서면으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며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창비 측은 “한강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며 “보다 자세한 소감은 12월 10일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낭독되는 수락 연설문을 통해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강의 공식 소감은 네 줄에 불과했지만 그의 생각들은 10일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상당히 드러났다. 노벨위원회가 유튜브에 공개한 인터뷰에서 한강은 약 7분간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수상 소감을 이어 나갔다. 그는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인터뷰 동안 “놀랐다(surprised)”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전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한강 본인은 그때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다. “누군가 전화해서 얘기해줬어요.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막 끝낸 참이었죠. 아주 평화로운 저녁이었어요. 정말 놀랐습니다.” 이날 하루 한강은 “책을 조금 읽고 산책했다”며 “매우 편안한 하루였다”고 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강은 “어릴 때부터 번역서뿐 아니라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며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소식이 한국 문학 독자들과 내 친구들,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강은 “영감을 준 작가를 몇 명 고르는 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작가가 집단적인 존재였고, 그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영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언급하자 한강은 “어렸을 때 그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정말 좋아했다”면서도 “그가 어린 시절 영감을 준 유일한 작가라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한강은 “작가들은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며 2021년 펴낸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부터 읽어볼 것을 권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직접 연결된 책 <소년이 온다>,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소설 <흰>, 그다음 <채식주의자> 순서로 읽으면 좋다고 했다. 부커상을 받아 외국 독자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채식주의자>에 대해 그는 “3년 동안 썼는데 꽤 힘들었다”며 “주인공과 등장인물, 나무와 햇빛 등 작품 속 모든 것의 이미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한강은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며 대화를 마쳤다.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은 11일 본인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앞 정자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강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출판사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중 한 곳을 통해 장소를 마련해 기자회견을 하라고 했는데 (딸이)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더니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더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딸이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접하곤 “무슨 소리냐, 당신 혹시 가짜뉴스에 속아서 전화한 것 아니냐”고 반신반의했던 상황도 전했다.
그는 “심사위원들이 아름다운 문장이라든지, 아름다운 세계를 포착했기 때문에 한 세대 위가 아니라 후세대(젊은 작가)에 상을 줬다”며 “우리 강이한테 상을 준 것은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라고 기뻐했다.
임근호/박종서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