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속 해부학자] '술에 취한 예술'로 보는 음주운전의 위험성

예술계 거장들 파멸로 이끈 '초록요정'
음주 뒤 최소 4~5시간 지나 운전해야

이재호 계명대 의대 교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장 베로, 1908년)
지난 5일 전직 대통령 자녀가 서울 이태원에서 음주 상태로 차를 몰다 사고를 낸 사건이 화제가 됐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49%로 면허 취소 기준인 0.08%를 훨씬 넘는다. 사고 직전 CCTV에 찍힌 당사자는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렸고, 신호를 위반해 우회전 차로에서 좌회전을 했다. 음주 때문에 정상적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상해를 가한 것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음주운전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각성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훈은 금방 망각되고 역사는 반복된다. 2018년 휴가 나온 군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뇌사에 빠진 ‘윤창호 사건’ 후 음주운전 기준이 강화됐다. 그럼에도 가수 김호중에 이어 유명인의 음주운전 사건이 또 터진 것이다. 장 베로의 작품을 보며 예전부터 음주에 대해 어떤 경고를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압생트에 빠진 예술가들

적절한 음주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장점이 있다. 반면 과도할 경우 건강을 해치고 자제력이 부족해져 음주운전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19세기 말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유럽 예술가들은 ‘초록 요정’으로 불리는 술과 일상을 함께했다. 이 초록색 술은 향쑥을 뜻하는 라틴어 ‘압신티움’에서 유래한 ‘압생트(absinthe)’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무려 72도에 달하는 높은 도수의 압생트를 마시고 영감을 얻었으며, 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서로 그리기도 했다.프랑스 인상파 화가로 파리 사교계의 총애를 받던 베로는 주로 파리지앵의 일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베로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두 남녀가 압생트를 마시며 하루의 노고를 풀고 있다. 도수가 높은 술이지만 턱을 괸 여인의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한 것으로 보아 과도하게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초록 요정이 또 다른 별명인 ‘에메랄드 지옥’으로 변하는 순간 요정은 말 그대로 지옥이 돼 버린다. 압생트를 사랑한 예술가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고, 아르튀르 랭보는 미쳐버린 시인으로 유명하다. 결국 1910년 스위스를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은 압생트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역사에 남은 이들의 작품이 압생트가 없었다고 탄생하지 않았을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이들이 술에 빠지지 않고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했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간 해독에는 시간이 필요

당시 모든 애주가가 압생트에 빠지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마다 술을 분해하는 간의 해독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간의 알코올탈수소효소가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하고, 이는 다시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에 의해 아세트산으로 대사된다. 이때 알코올의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두통과 같은 숙취를 유발하고 간을 손상시킨다.지인 가운데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에 운전해도 되는지 문의하는 사람이 꽤 많다. 이 질문에 답하는 데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음주 시점에서부터 혈중알코올농도가 시간당 0.015% 감소하는 것으로 계산하는 위드마크(widmark) 공식을 사용하면 대략적인 혈중알코올농도를 파악할 수 있다. 운전자가 섭취한 알코올양(음주량×술의 농도×0.7894)을 체중과 성별계수로 나눈 값에서 경과 시간의 0.015%를 빼면 된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 공식을 적용한 예를 보자. 몸무게 70㎏ 남성이 소주 한 병을 마셨다면, 음주 후 약 네 시간 뒤에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같은 술을 마셔도 같은 체중의 여성은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한 시간 정도 더 걸려 다섯 시간이 지난 후에 운전해야 한다. 성별계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공식은 변수가 많아 대략적인 추정치를 얻는 참고 자료로만 활용된다.

최근 학계에서는 잦은 음주운전 사고 때문에 ‘한국형 위드마크’를 만들어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지 못한 경우라도 음주운전자를 적절히 처벌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현실적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논의가 끊이지 않는 음주운전을 뿌리 뽑는 계기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