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연극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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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연극 '트랩'무대의 삼면을 둘러싼 객석. 무대와 관객 사이에는 목제 울타리 하나밖에 없는 가까운 거리. 대사를 하고 있지 않아도 움직임 하나하나 관객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관객은 배심원처럼 가운데 펼쳐지는 무대를 지켜본다. 연극 '트랩'이 공연하는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의 모습이다.서울시극단이 선보이는 '트랩'은 독일 소설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 소설 ‘사고'를 원작으로 하는 블랙 코미디 연극이다. 주인공은 출세한 섬유회사 판매 총책임자 트랍스. 최신 8기통 스포츠카를 타고 질주하던 중 한 시골 마을에서 자동차가 고장 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이때 그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한 인상 좋은 노인. 은퇴한 판사인 그는 자기 집에 트랍스를 초대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을 붙인다. 그의 집에서 열리는 저녁 파티에 참석할 것.저녁 파티는 맛있는 와인과 고급 요리를 곁들인 법정 놀이다. 이 자리에는 은퇴한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사형집행인이 초대된다. 검은색 법복을 입고 등장하는 이들의 외모가 심상치 않다. 머리카락은 기묘한 모양으로 빳빳하게 세워져 있고 옷은 새까만 깃털로 장식돼있다. 새로운 손님을 맞아 신이 난 이들은 함께 깍깍 소리를 내며 흥분한다.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까마귀 떼처럼 주인공 트랍스를 갉아먹기 위해 찾아왔다.
법정 놀이에 피고인으로 초대된 주인공 트랍스
그의 삶을 해부하며 죄를 찾는 과정 통해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에 대한 질문 던져
객석이 무대를 삼면으로 둘러싸고
배우들이 실제로 음식 먹으며 연기해
실감나고 생생한 광경 매력적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 20일까지
손님으로 초대된 트랍스의 역할은 피고인. 그는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지만, 이들은 코웃음을 치며 트랍스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트랍스가 아주 빠른 속도로 승진했고, 비슷한 시기에 그가 혐오하던 상사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끼를 문 검사는 트랍스가 살아온 삶과 그의 속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대단한 살인사건이나 미스터리는 없어도, 한 사람의 삶을 양파 껍질처럼 한겹씩 벗겨내는 추리 과정에 배심원이 된 관객은 진짜 재판을 보듯 빠져든다.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은 생동감. 저녁 식사가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은 실제로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연기한다. 삼면을 가까이 둘러싼 객석 덕분에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욱 자세하게 보인다. 다른 인물이 대사하고 연기를 하는 순간에도 각자 자리에서 식사하고 대사에 표정과 몸짓으로 반응하며 인물을 그려내는 모습이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극이 진행될수록 실제로 만취한 노인들의 저녁 술자리를 목격하는 기분이다.각종 혐의가 더해지지만, 오히려 이 사실을 반기는 피고인 트랍스. 그에게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변호사에게 오히려 호통치며 자신은 유죄라고 선언한다. 이 혐의가 진실인지, 누명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강렬한 결말로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에 대한 물음표를 마음속에 남기는 작품. 공연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 20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