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스튜디오 만든 곳이 여기라고?"…의외의 회사 '잭팟' [이미경의 인사이트]
입력
수정
OTT 활황에 뜬다는 '이 사업'# 검은 앞치마를 입은 40명의 요리사가 2838㎡(약 860평) 실내 공간에서 동시에 요리 경연을 펼친다. 한쪽 조리대에선 대게를 찌고 그 반대편에선 고기를 삶는다. 또 다른 조리대에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강한 불에 채소를 볶는다. 40개 조리대가 일제히 불꽃과 연기를 내뿜지만 그 어느 화구의 화력도 약해지지 않았다. 실내 공간이지만 연기와 냄새는 곧바로 사라졌다. 15m 층고의 탁트인 천장 구조와 지상 1.5m 높이에 설치된 에어컨 덕에 환기가 원활해서다.
유진그룹이 만든 '유지니아'
1만3343㎡ 규모 파주 스튜디오
인근 CJ ENM 스튜디오도 '풀부킹'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까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첫회 장면이다. 요리사들의 화려한 기술과 압도적인 스튜디오 규모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17일 공개된 이후 4주 연속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실내 대형 세트장 연출을 가능하게 한 건 레미콘·건자재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유진그룹이다. 흑백요리사 전 분량이 촬영된 스튜디오 유지니아는 유진그룹의 건설 계열사 동양이 지난해 11월 경기 파주시 야당동에 준공한 대형 멀티 스튜디오 단지다. 야적장으로 사용되던 부지를 연면적 1만3343㎡(약 4000평) 규모의 최신 영상 촬영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국내 기업이 공유(임대)형으로 운영하는 스튜디오 가운데 최대 규모로, 스튜디오 4개 동과 운영·지원동으로 구성됐다.
○레미콘 회사의 신성장 엔진
유진그룹은 계열사 동양이 17년간 보유하던 야적장 부지를 재개발하기 위해 2021년 신사업 검토에 나섰다. 아파트, 골프장 등 여러 사업 후보와 저울질한 끝에 스튜디오 건립을 최종 낙점한 건 콘텐츠 산업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영상콘텐츠 시장 규모는 2018년 26조2813억원에서 지난해 32조7716억원으로 24.7% 커졌다. 같은 기간 영상 콘텐츠 수출액은 7억7124만달러(약 1조423억원)에서 9억9717만달러(약 1조3477억원)로 29.3% 늘었다. 유튜브·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 플랫폼이 약진하고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이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신사업 검토 당시 국내 대형 스튜디오들의 공실률이 제로(0)였던 점을 눈여겨봤다“며 “K열풍과 맞물려 국내 영상콘텐츠의 제작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고 설명했다.예상은 적중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OTT 플랫폼들은 현지화 전략을 쓰며 흑백요리사 같은 국내 오리지널 작품 제작을 늘리고 있다. 유지니아 스튜디오 4개동 모두 개관 이후 지난 1년간 가동률 100%를 유지한 이유다.
○K콘텐츠 붐에 스튜디오 ‘풀가동’
OTT 플랫·영상 제작사들은 통상적으로 3개월, 6개월 등 촬영 기간을 정해놓고 스튜디오 임대 계약을 맺는다. 유지니아 4개 스튜디오의 촬영 일정은 내년 초까지 빽빽이 차있다.유진그룹에 앞서 스튜디오 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CJ ENM이다. 2022년 7월 파주 탄현면에 연면적 3만7407㎡(약 1만1300평) 규모의 스튜디오 단지를 준공했다. 개관 이후 13개 스튜디오가 풀가동되고 있다. 공유형 스튜디오인 유지니아와 달리 CJ ENM 스튜디오는 제작 단계에 CJ ENM 계열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
대형 스튜디오를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고려 사항은 접근성이다. 출연진, 제작사, 협력사 직원들의 이동시간을 줄이는 게 제작비 절감의 관건이다. 유진그룹과 CJ ENM이 교통 혼잡도가 덜하고,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가까운 파주시를 선택한 이유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스튜디오 단지를 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개장한 대전스튜디오큐브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전시는 지역브랜드 홍보, 일자리 창출 등을 기대하고 운영사인 한국콘텐츠진흥원에 토지를 30년간 무상임대했다. 파주시도 시내 스튜디오 단지가 많아지자 이를 헤이리예술마을, 마장호수, 자운서원, 통일동산 등 관광자원과 연계해 방문객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관광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K콘텐츠에 대한 호감 때문”이라며 “지자체들이 스튜디오 단지를 잘 활용한다면 훌륭한 지역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