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거장' 故 박서보 1주기…韓·美서 다시 만난다
입력
수정
지면A30
'신문 묘법 2022~2023' 주제“배접(褙接·종이나 천을 겹쳐 붙이는 그림의 밑작업)해라. 나가면 작업할 게 너무 많다.”
화이트큐브 뉴욕에서 개인전
조현화랑은 '박서보|권오상'展
지난해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단색화 대표 화가 박서보 화백(1931~2023)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작품 활동을 돕던 며느리에게 남긴, 퇴원하자마자 바로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라는 당부였다.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세계적인 화랑 화이트큐브의 미국 뉴욕지점에서 열 개인전. 작고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 그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내년에 개인전을 연다. 작업실을 찾은 제이 조플링 화이트큐브 대표와 신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더없이 의미가 큰 작업이라며 좋아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조급하다.”
박 화백이 필사적으로 준비한 이 전시는 결국 그의 1주기 기념전이 됐다. 다음달 7일 화이트큐브 뉴욕에서 ‘박서보, 신문 묘법 2022~2023’이라는 제목으로 개막하는 전시다. 그의 마지막 작품 30점이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박 화백은 화이트큐브의 유일한 한국인 전속 작가였다.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박 화백이 몰두한 화풍은 ‘신문 묘법’.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인 뒤 오래된 신문지를 붙이고 그 위에 유화물감과 연필로 드로잉하는 방식의 작업이다. 이를 통해 그는 역사와 기록, 시간이라는 화두를 다뤘다. 폐암 3기 투병 중이었지만 그가 이 화풍으로 남긴 신작은 51점에 달한다. 갤러리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런던 서펜타인 예술감독이 박 화백 타계 한 달 전 진행한 인터뷰도 도록에 함께 실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화이트큐브 뉴욕의 전시는 내년 1월 11일까지.국내에서도 그의 1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박서보 | 권오상’이 열린다. 지난해 박 화백의 생전 마지막 개인전을 연 부산 조현화랑은 권오상의 ‘데오드란트 조각’ 작품(사진)을 선보인다. 데오드란트 조각은 인체를 찍은 사진들을 잘라 붙여 입체적인 형상을 만드는 권오상 특유의 작풍이다. 전시에서는 박 화백의 여러 시절을 담은 실물 크기 작품 8점이 소개된다. 2022년 박서보재단(옛 기지재단)에서 열린 ‘오브제로서의 박서보’ 전시에도 선보인 작품들이다.조현화랑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시기에 화가, 교육가, 예술 행정가로서 활동한 박서보 화백의 조각과 나란히 서서 그의 예술적 유산을 기리고, 그가 한국 미술에 남긴 깊은 영향을 되새겨볼 기회”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