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MET 뒤흔든 백석종의 '승리'

오페라 토스카

테너 백석종 카바라도시 역할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서 공연

압도적 성량·안정된 고음 매력
'체념과 평온' 표현한 3막 인상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토스카’에서 연기하는 한국인 테너 백석종(왼쪽)과 알렉산드라 쿠작.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제공
푸치니는 베르디와 바그너처럼 평생을 오페라 작곡에 몰두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쓴 12편의 오페라 중 상당수가 여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전통 판소리의 ‘심청가’나 ‘춘향가’처럼 푸치니의 작품은 ‘투란도트’ ‘나비부인’ 등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토스카’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막이 오르자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무대에 백석종이 등장했다. 그는 토스카의 상대역 카바라도시를 맡았다. ‘토스카’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이탈리아로 진격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매력적인 여가수 토스카와 그의 애인이자 화가인 카바라도시 그리고 토스카를 취하려는 로마의 경시총감이 극을 이끌어간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은 가수 역량의 최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럽의 권위 있는 극장의 객석 규모는 대부분 2000석 전후이고,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극장이 2700석으로 제일 큰 편에 속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객석은 3800석에 달해 극장을 울려낼 성량을 가졌는지가 가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백석종이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로 압도적 성량과 안정된 고음을 꼽을 수 있다. 객석 끝까지 뻗어나가는 청량한 소리와 섬세한 감성이 더해졌다. 2막에서 스카르피라에게 고문을 당하던 카바라도시가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 소식을 듣고 “비토리아(Vittoria·승리다)!”를 외치는 장면은 이날 공연의 정점이었다.

백석종은 리릭 스핀토에 속하는 테너다. 그는 서정성이 부각되는 ‘리릭’과 찌르는 듯한 강렬함을 상징하는 ‘스핀토’의 속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성악가는 상황에 따라 소리의 농도를 조절해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테크닉은 아무나 갖출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백석종은 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에 루체반 레 스텔레(E lucevan le stelle·별은 빛나건만)’를 의외의 방식으로 빚어냈다. 토스카와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는 이 아리아는 격앙된 감정을 쏟아내는 드라마틱한 곡이다. 그러나 그는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갈망하는 처절한 몸부림 대신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념적 평온함으로 해석했다. 쏟아내거나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실의 여백을 선택한 백석종은 청중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만큼 엽기적이거나 극단적이진 않지만, 토스카 역시 구조적인 한계점이 명확하다. 2막에서 널뛰듯 변하는 토스카의 심리 상태나, 두 명의 주인공이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도 납득하기 어렵다. 만연하는 논리적 비약과 허점투성이 전개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모든 비현실의 덫을 극복하는 것은 위대한 음악이다. 노래는 비논리에 숨결을 불어넣고 단절된 서사를 이어간다. 오페라에서 가수의 역할이 결정적인 이유다. 이날 백석종과 함께 작품을 이끈 토스카 역의 알렉산드라 쿠작은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올림피아 역할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데뷔한 이후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두 주역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독보적 음색은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을 사로잡았다.올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는 백석종을 포함해 5명의 한국인 성악가가 출연한다.

뉴욕=김동민 아르떼 객원기자·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