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문학'이라는 노벨문학상 수락연설… 한강은 무슨 이야기할까

오는 12월 10일 스톡홀름서 연설 및 강연
반전, 국가 폭력 등 메시지 담길 가능성
"나는 인간의 종말을 믿지 않습니다. 사랑과 희생, 인내가 가능한 영혼과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작가의 임무는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윌리엄 포크너는 1949년 12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만찬에서 발표한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생애 단 한 번 주어지는 영광의 기회,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은 또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여겨진다. 수상자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리는 수상 소감 연설 겸 강연에서 자신의 문학 세계 전반을 비롯해 사회와 문학의 관계, 세계 문학에 대한 본인의 견해, 앞으로 문학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한 생각을 발표한다. "수상자들이 작품을 쓰는 것보다 더 공들여 연설문을 쓴다" 혹은 "귀로 듣는 문학"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노벨문학상 수락연설문만 모아 출간한 책도 있다.

15일 출판계에 따르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가 두문불출하면서 오는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강은 지난 11일 출판사를 통해 110자 분량의 짤막한 서면 수상 소감만 공개한 상태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은 수락 연설을 통해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로 감동을 줬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자신에게 문학의 길을 열어준 이가 아버지였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아버지의 여행가방'이란 소재로 풀어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시인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하고 여행가방 속에 원고 뭉치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시나 소설 등 형태로 연설한 수상자도 있다.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연설은 마치 한 편의 산문시와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옛날 옛적에 한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란 민담의 한 구절로 시작하는 이 연설은 노파와 젊은이의 대화를 통해 언어의 중요성과 문학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모리슨이 이 연설을 마쳤을 당시 모든 청중이 기립 박수를 보낸 바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로 잘 알려진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1998년 수상)는 스스로를 소설 속 인물로 환원해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인물로부터 무엇을 배웠고, 어떤 식으로 그들과 소통하며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는지 이야기했다.

앞서 2016년 싱어송라이터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밥 딜런은 주스웨덴 미국대사가 수락연설문을 대독하는 것으로 시상식 참석을 대체했다. 당시 순수문학 작가가 아닌 그의 수상에 논란이 이어지자 그는 연설문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딜런은 연설문에서 "스스로 '내 노래가 문학인가?'란 질문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며 "그 질문을 대신 해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에 대한 답변을 멋지게 해 준 스웨덴 한림원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2월 한강의 연설문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수상 이후 부친인 한승원 작가를 통해 "전쟁에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냐"는 의사를 밝히고, 2017년 미국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 만큼 유사한 메시지가 담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작품들에서 보여준 국가의 폭력과 억압, 그에 따른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통,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등도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한편 한강은 오는 17일 열리는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공식 행보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예정대로 시상식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