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나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갤러리스트 "아름다움이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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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스트 마시모 데 카를로 인터뷰“솔직히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두 눈을 통해 무언가를 응시하고자 하는 필요성, 즉 개념적인 태도를 갖는 겁니다. 갤러리스트로서 개방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죠.”
밀라노, 런던, 파리, 홍콩, 베이징 이어 올해 서울 진출
마우리치오 카텔란, 엘름그린&드라그셋 등 스타 군단 보유
잘 팔리는 ‘예쁜 작품’보단 의미 있는 현대미술에 중점
“서울은 열려 있고 개방적…한국 작가들에 관심”
존 암레더, 카를라 아카르디, 마시모 바르톨리니, 마우리치오 카텔란, 엘름그린&드라그셋…. 작품 한 점으로 짜릿한 전율을 일으키며 동시대 미술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이 예술가들은 늘 그와 함께였다. 작업에 오롯하게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갤러리스트인 동시에, 이들의 예술세계에 파장을 일으키는 ‘영감 한 스푼’을 떨어뜨려 새로운 창작의 실마리를 던지는 동반자. 198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를 연 이후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갤러리스트가 된 마시모 데 카를로(66) 얘기다.마시모 데 카를로의 머릿 속은 복잡하다. 미술에 몰두하는 걸로도 모자라 음악과 영화에 애정을 쏟고, 또 건축에 대한 관심도 깊다. 애초에 약사로 일하며 돈을 벌고, 실험 음악에 매료돼 콘서트 기획 프로듀서를 하다 홀린 듯 미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삶의 궤적부터가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그가 선보이는 컬렉션도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60여 명이 넘는 그의 ‘전속 작가 군단’은 장르적 경향성으로 묶기도 애매하고 지역성도 흐릿하다. 무질서해 보이는 혼돈(Chaos) 속을 관통하는 질서(Cosmos)가 있다면, 실험성과 예술에 대한 열정. 잘 팔리는 ‘예쁜 작품’을 우선하는 여느 상업 갤러리와 결이 다르다.
이 예측 불가능한 갤러리스트는 요즘 서울을 눈 여겨 본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 깨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여 만든 ‘번역된 도자기’ 연작으로 유명한 이수경, 강렬한 색채와 운동성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기대받는 신진작가 배헤윰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더니, 올해 초 서울 신사동에 밀라노, 런던, 파리, 홍콩, 베이징의 뒤를 잇는 6번째 거점을 마련했다. 지난달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서울 기간 스튜디오(서울 전시공간은 갤러리가 아닌 스튜디오로 부른다)에서 만난 그는 “서울은 열려 있고 열정적”이라고 했다. 한국 미술시장에 스스로를 투영해 당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을 소개한 것이다. ▷‘갤러리스트’ 마시모 데 카를로가 궁금합니다.
“갤러리스트는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면 예술가와 컬렉터, 관객이 소통하는 다리를 놓는 도구 역할이죠. 갤러리스트를 통해 작가는 폭 넓게 세상과 소통하게 되니까요. 그러면서도 판매 같은 측면에서 갤러리스트는 굉장히 구체적인 정보에 대한 소통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감성적인 면과 이성적인 면을 아울러야 하는 거죠. 저는 18살에 음악 산업에 종사하며 뮤지션들과 매일매일 부딪치며 소통했고, 나중엔 공식이나 기술적인 이해가 중요한 약학을 전공했어요. 이런 경험을 겪으며 운 좋게도 감성과 이성적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갤러리스트가 됐어요.”▷작가들과 깊은 관계를 구축하고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비결이 있다면요.
“첫 갤러리를 연지 벌써 40년 가까이 됐어요. 1985년에 어시스턴트로 처음 갤러리에 발을 들였는데, 이때 처음 인연을 맺은 존 암레더는 지금 이 순간 서울에서까지 작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됐네요(마시모데카를로 서울은 KIAF-프리즈 기간 존 암레더의 작품을 전시했다). 저는 작가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성공적인 갤러리스트였다고 할 수 있어요. 매 순간 함께 작업하고, 제가 다루는 작가들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또 성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개발해요. 제 입장에선 정말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발칙한 개념과 과감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이며 ‘현대미술계 악동’,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역시 갤러리스트 데 카를로를 만나 날개를 펼친 작가 중 하나다.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를 도와줬을 뿐 아니라 직접 작품을 창조해냈다. 1999년 선보인 ‘완벽한 하루’는 갤러리 벽에 덕테이프로 데 카를로를 칭칭 감아 붙이면서 완성됐다. 3시간이나 매달려 있던 데 카를로는 결국 병원에 실려갔지만, 두 사람의 시도는 현대미술을 풍자하며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으로 회자된다.▷카텔란과의 협업은 작가와 갤러리스트의 ‘화학적 결합’이 만든 성과로 볼 수 있을까요.
“굉장히 자신감을 갖고 추진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카텔란과는 아티스트와 갤러리스트의 관계를 넘어 친한 친구이기도 하죠. 전례 없는 시도라 흥미로웠는데,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 갤러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저희 둘이 강렬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던질 수 있었요. 말씀대로 굉장히 특별한 화학 작용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겠네요.▷카텔란과의 또 다른 화학작용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그 작품은 저와 카텔란이 한 일종의 게임이었어요. 하지만 또 다시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아마 다른 아티스트와 하게 될 거예요. 이 게임은 퍼포먼스뿐 아니라 다양하게 발현되기도 해요. 이를테면 파울라 피비가 절 찍은 사진들도 이런 화학작용이라 볼 수 있겠네요. 가끔 작가들에게 제가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 대상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미술애호가들이 서울에 새로운 공간을 연 결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습니다.
“마시모데카를로 갤러리는 프리즈 서울 첫 해부터 참여를 했어요. 한국은 굉장히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열정이 크고, 컬렉터와 작가들이 자신만의 ‘아이코닉’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아주 젊은 시장으로 모두가 의욕이 넘칩니다. 그러면서도 세계 미술시장에 기꺼이 녹아들 수 있는 개방적이고 여유로운 태도도 갖고 있죠. 서울 스튜디오를 열기 전부터 파리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로 기획 전시를 치른 적 있어요. 정말 깊은 가치를 추구하는 작가들을 신중하게 골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컬렉터과도 동시대 예술이라는 맥락 속에서 관계를 맺길 바라고 있어요.”▷서울 강남 지역에 스튜디오를 마련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럼요. 런던이나 밀라노처럼 상투적인 태도를 탈피하는 새로운 공간을 찾고 싶었어요. 특히 수집가과 가까이 있는 공간을 고르려 했는데,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큰 공간은 아니지만, 이 곳에서 마주 앉아 예술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인 성과에 대해서도 만족스러워요.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동시에 존 암레더의 작품을 스튜디오에서 선보이며 많은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프리즈 서울에서도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판매했고, 매출도 작년보다 증가했고요. 꾸준히 한국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갤러리가 어떤 예술을 추구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갤러리스트는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갤러리라는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장르를 구분하거나 범주화하는 건 사실 무의미해요. 어떤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다양한 카테고리의 예술이 융합해 최종적으로 정체성을 완성하는거니까요. 지금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저와 30년 함께 일한 마시모 바르톨리니가 선보이는 전시가 좋은 설명이 되겠네요. 회화라고 하기보단 자연, 음악, 인간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거든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미학을 말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오브제를 바라볼 때,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기도 하고 여러 방향에서 살펴보면서 일종의 하모니(조화)를 찾아 나갑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에 만족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두 눈을 통해 무언가를 응시하고자 하는 필요성, 즉 개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미학(aesthetics) 같은 미적 감각이 아니라요.”
유승목 기자, photographer_박충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