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반도체 쇼크'에도…"월가는 변동성에 웃었다"

사진=REUTERS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변동성이 컸던 올해 3분기에 미국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3년 만에 최고의 분기 성과를 거뒀다. 주식·채권 거래 및 투자은행 부문에서 수익을 크게 늘리면서다.

골드만삭스는 15일(현지시간)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29억9000만 달러를 기록하고 매출도 동기간 7% 늘어 127억달러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주당순이익은 8.40달러로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시장 기대치 6.89달러를 훌쩍 웃돌았다.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기조와 뉴욕증시 강세로 주식 거래 부문의 수익이 많이 늘어난 게 3분기 호실적을 이끌었다는 평가다.특히 기업 인수·합병, 회사채 발행, 기업공개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투자은행 부문 수수료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그간 고금리에 대출 등을 미뤘던 기업들이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됨에 따라 자본 조달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유동성 증가에 따른 자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관리 사업부도 호황을 나타냈다.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도 기대 이상의 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3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 줄어든 68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주당순이익이 81센트로 시장 전망치(77센트)를 상회했다. 매출 역시 254억9000만달러로 253억달러의 전망치를 웃돌았다. 은행의 주 수익원인 순이자이익이 1년 전에 비해 2.9% 줄었지만 주식·채권 거래와 자산관리, 투자은행 부문 수수료로 이를 상쇄했다는 분석이다.

씨티그룹도 비슷한 이유로 시장 예상을 웃도는 호실적을 발표했다.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한 203억2000만달러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198억4000만달러)를 넘겼다. 주당순이익은 전문가 관측치(1.31달러)를 웃도는 1.51달러로 집계됐다. 분석가들은 "씨티그룹의 투자은행 부문 매출이 1년 전보다 31% 급증하면서 다른 부문의 매출 감소를 상쇄했다"고 분석했다. JP모간도 지난 11일 순이자이익이 1년 만에 3% 느는 등 3분기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블룸버그통신은 "팬데믹 이후 변동성이 가장 극심했던 3분기에 대형은행들은 시장 예상을 뒤엎고 실적을 만회했다"고 전했다. 지난 3분기 시장은 요동쳤다. 투자자들이 고용, 물가 등 새로운 경제 지표가 나올 때마다 Fed의 금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다. 이 기간 S&P 500 지수는 8.5% 하락했고,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 옵션은 15대 수준에서 22.62까지 치솟기도 했다.

Fed가 0.5%포인트 '빅컷(금리 인하)'을 단행한 뒤엔 S&P 500 지수가 다시 사상 최고치를 회복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금융 환경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며 "고객들이 포지션을 재조정하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등 거래 필요성이 계속 발생한 게 글로벌 전반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변동성으로 인해 업계 임원들도 실적 호조를 예상하지 못했다. 솔로몬 CEO는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거래 부문 매출이 1년 전보다 10%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성적표에서 골드만삭스는 3분기 주식 거래에서 35억달러의 매출을 창출해 2021년 1분기 이후 최고 실적을 보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트레이딩 부문에서 12%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브라이언 모이니한 CEO가 지난달 "한 자릿수 초반 정도의 소폭 증가만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과 대조된다.이에 월가에서는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없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당초 우려와 달리 은행권에 타격을 입히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CEO 등이 깜짝 실적을 발표한 뒤에도 "앞으로가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분위기도 계속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