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커지는 美 대선 리스크, 누가 되더라도 국익 지킬 수 있어야

트럼프·해리스 박빙 구도로 재편
경제·안보 시나리오별 대응해야
미국 대선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 이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율 경쟁에서 앞서다가 이달 들어 초박빙 대결로 바뀌었다. 기세를 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일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한국을 겨냥한 폭탄 발언이 쏟아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얼마 전 한국을 ‘무임승차국’으로 비난하며 한국에 있는 일자리를 미국으로 빼앗아 오겠다고 한 데 이어 이번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대폭 올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는 전날 시카고 경제클럽 대담에서 “한국은 ‘머니 머신’(부자 나라)”이라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약 13조원)를 내라고 압박했다.트럼프는 에너지 정책에서 ‘바이든 지우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취임 첫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폐기하고 전기차 판매 의무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예찬한 관세도 뒤엎으려 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산 자동차 관세율도 확 끌어올린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트럼프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바이든의 성과를 뒤집을 태세다. 한·미·일 중심의 안보 협력과 북핵 대응 체제를 흔들려는 게 대표적 예다. 수없이 떠벌려온 것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담판에 나서 한반도 질서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북핵 동결을 대가로 대북 제재를 풀어주거나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주면서 군축 협상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반면 해리스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면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대부분 계승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에선 외교와 제재를 병행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접근법을 유지할 것이다. 조세 분야에선 소득세와 법인세를 올리려고 하겠지만 대중 관세율은 크게 바꾸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동맹국 중심의 경제·안보 협력을 유지하고 탈탄소 정책은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IRA 전기차 보조금은 유지되고 반도체 보조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해리스가 당선되면 한국 기업들이 더 큰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배터리를 비롯해 한국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대중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 트럼프 재집권기에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큰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중국 압박과 미국 중심의 제조업 정책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치열한 대선 경쟁 속에서 중국 때리기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두 사람의 공약이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공화당이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견제로 차기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긴 쉽지 않다. 차기 행정부의 임기가 4년에 불과해 트럼프가 1기 때처럼 극단적 정책을 추진할 동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대중 압박 노선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는 미국의 탈중국화 정책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중국에 모여 있는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한국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소재 및 부품 경쟁력을 키우고 미국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대중 무역 의존도를 탈피해 다변화한 무역 및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동시에 중국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외교적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기술력과 외교력을 중심으로 국가적 기본 역량을 키우는 게 미국 대선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국의 경쟁력을 유지시켜 주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