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DSR 규제 피한 가계 대출 '118조'…전체의 60%

한경 '금융권 대출 DSR적용 현황' 단독입수

상반기 가계대출 60% '소득 규제' 안받아
전세금·이주비 등 정부 부채관리 공염불
국내 18개 은행의 올 상반기 신규 가계대출이 187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0%를 넘는 118조원가량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꼽히는 가계부채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금융권 가계대출의 DSR 적용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은행권 신규 가계대출 187조원 가운데 36.7%인 69조원만 DSR이 적용됐다. 나머지 118조원(63.3%)은 DSR 규제를 받지 않았다. 신규 대출 규모와 DSR 적용 비율 등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DSR은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린다’는 원칙을 담은 핵심적인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수단이다. 현재 은행에 40%, 2금융권에 50% 규제를 적용한다. 예컨대 연 소득이 1억원이면 은행에서 원리금 상환액 기준 4000만원(월 333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DSR이 적용되지 않은 가계대출 비중이 6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면서 DSR 규제가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출 시 DSR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항목이 많아서다. 먼저 차주의 총대출이 1억원 미만이면 적용 대상이 아니다. 디딤돌 등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도 DSR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중도금·이주비, 대환(갈아타기) 대출도 마찬가지다.현황 자료를 보면 정책·전세·중도금·이주비 대출 등이 전체 신규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2%(53조원)에 달했다. 대환대출을 포함한 기타 항목이 24.3%, 1억원 미만 대출이 8.9%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DSR 적용 범위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서민 내 집 마련 지원’ ‘부동산 경기 부양’이라는 다른 정책적 목표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김 의원은 “DSR 규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 '관리 공백'에 늘어난 가계빚…디딤돌·버팀목 올 30조 폭증
금융위-국토부 '정책금융 엇박자'…은행 주담대 64%가 디딤돌·버팀목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3월 사석에서 “디딤돌 대출이 가계부채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디딤돌 대출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걱정이었다. 당시는 가계대출이 두 달 연속 감소하는 등 안정세를 보이는 시기였다.걱정은 현실이 됐다.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등 국토교통부의 정책모기지 잔액은 올 들어 매월 3조~4조원씩 불어났다. 지난달까지 디딤돌·버팀목 대출 잔액은 30조원 늘어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증가분(46조5000억원)의 64%를 차지했다.

○여전업 DSR 미적용 대출 92%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금융권 가계대출의 DSR 적용 현황’ 자료를 보면 금융당국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정책모기지를 포함한 DSR 미적용 가계대출 비율이 전체의 63.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DSR은 차주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현재 기준은 은행권이 40%, 2금융권은 50%다. 연봉 1억원인 사람은 은행에서 원리금 상환액 4000만원 이하까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의미다.

DSR 규제는 총대출이 1억원 이상인 차주에게만 적용된다. 정책모기지와 전세자금, 중도금·이주비, 서민금융 등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은행권의 올 상반기 신규 가계대출에서 정책·전세·중도금·이주비 대출 비중은 28.2%로 집계됐다.

규제가 느슨한 2금융권의 DSR 미적용 대출 비율은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전(신용카드)업권의 미적용 비율은 92.1%에 달했다. 현금서비스, 할부·리스 등은 DSR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모기지 엇박자도

‘규제 공백’의 여파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올 9월까지 가계대출 잔액은 40조9000억원 증가해 작년 전체 규모(37조1000억원)를 넘어섰다. 지난 8월에는 월간 역대 최대인 9조70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체 가계부채 잔액은 1780조원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1996조원) 규모에 육박했다.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이 포함된 주택담보대출은 46조5000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보다 많았다.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는 얘기다.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만 잘 관리해도 가계부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처 간 정책모기지 ‘엇박자’도 가계 빚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위원회는 소관 대출 상품인 보금자리론의 금리를 시중 금리 이상으로 올려 올해 보금자리론 잔액을 16조원 감소시켰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디딤돌·버팀목 대출을 쏟아내다 지난 8월에야 금리를 0.2~0.4%포인트 올렸다. 30년 만기 디딤돌 대출 금리는 연 3.95%로 연 4%대인 은행 주담대보다 여전히 낮다.

디딤돌 대출은 부부합산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받을 수 있다.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한다는 정책적 취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취약계층의 무리한 대출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에 DSR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정부는 DSR 적용 확대 등 다양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세대출에선 유주택자 전세대출의 이자부터 DSR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세 및 정책모기지에서 주택 가격과 지역, 소득 수준별로 차등화해 DSR을 적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강현우/정소람/최한종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