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부진, 칩 수요 침체 아닌 장비 수요 둔화 문제"

반도체전문가들 "반도체회사 식각기술 발전으로 장비 활용력 제고"
"TSMC,삼성전자,인텔등 주문 늦추고 있어"
AI 칩 수요는 여전히 강력
사진=REUTERS
실적 부진 쇼크로 전 날 주가가 15% 폭락한 ASML은 이틀째인 16일(유럽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증시에서 또 다시 5% 하락했다. 미국증시 개장전 거래에서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4.5% 하락한 697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ASML은 전 날 공식 발표 하루전 자사 홈페이지에 유출된 분기실적 보고서에서 예상외의 부진이 드러나면서 하루만에 시가총액에서 492억유로(73조원)가 증발됐다. 뿐만 아니라 ASML의 실적 쇼크는 미국 증시에 이어 이 날 TSMC,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아시아의 반도체 주식도 하락시켰다. 그럼에도 해외 반도체 산업 전문가들은 AI 칩에 대한 수요 전망이나 전반적인 반도체 수요 전망을 유지할 것이며 반도체 주식들이 무차별적으로 급락한 것은 과잉 반응이라고 밝혔다.

특히, 엔비디아 처럼 AI칩을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들은 ASML이 판매하는 리소그래피 수요와는 간접적으로만 관련돼 있다. 엔비디아, AMD가 만드는 AI칩의 위탁 생산업체인 TSMC가 엔비디아 칩에 대한 수요가 '미쳤다'고 표현할 정도로 AI칩 수요도 여전히 강력한 상태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ASML의 노광장비 수요 부진이 반도체 수요 부진이라기 보다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식각 기술 발전으로 노광장비 활용 단계가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한 반도체 산업을 추적하는 조사기관인 IBS의 최고경영자(CEO) 헨델 존스는 주요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ASML의 주력 기계를 사용하는 단계수가 최근 3분의 1까지 줄었다고 밝혔다.

존스는 삼성전자의 예를 들어 최첨단 칩 식각 기술을 사용할 경우 ASML의 기계를 사용하는 단계를 종전의 5~6단계에서 1~2단계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존에 보유한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에 대해 초과생산능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AI 칩과 AI 전용 메모리 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반적인 반도체 산업 예측은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며 ASML의 수요 급감은 과도기의 일시적 변화라고 말했다. 로이터와 인터뷰한 또 다른 분석 회사 테크인사이트의 부회장 댄 허치슨은 "인텔과 TSMC, 삼성전자 모두 ASML 주문을 철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팬데믹 기간부터 제조설비를 비축해와 반도체 생산능력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이다.

허치슨은 보통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공장 가동율이 90% 중반대에 도달해야 새로 장비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평균적으로 반도체 공장 가동율이 약 81%라는 밝혔다. 이 같은 가동율이 최근 인텔이 공장 확장 속도를 늦추고 삼성과 TSMC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ASML의 최첨단 노광장비에 대한 수요는 기존의 증가세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ASML은 2025년 총 순매출을 이전 예측의 하단에 가까운 300억-35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분석가들은 ASML이 내년 매출 전망을 낮춘 것은, 팬데믹 기간중 전세계 제조업체들이 ASML의 리소그래피 장비를 미리 비축한데 따라 발생한 과잉생산능력을 반영할 것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ASML의 내년 지침이 최근 들어 전세계 반도체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여주는 지연된 지표라고 언급했다.

ASML은 이 날 성명을 통해 "AI 칩 붐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시장의 다른 부문은 예상보다 오래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로직칩을 만드는 회사들은 주문을 미루고, 메모리칩을 만드는 고객들은 제한적인 신규 생산용량 추가만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