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기 딱 좋다”는 말에 고고학 포기한 ‘쿼크의 아버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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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태어난 머리 겔만은 신동이었다. 세 살 때 복잡한 암산을 했다. 월반을 거듭해 14세에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 예일대에 입학했다.
김현철 지음
계단
496쪽|2만6000원
고고학이나 언어학을 공부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그따위 학문은 굶어 죽기에 딱 맞지.” 물리학을 권했다. “내가 보기에 요즘 물리학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것 같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그렇고 양자 이론이라는 새로운 물리학도 그렇고. 너처럼 똑똑한 아이라면, 그건 한번 해볼 만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다. 겔만은 196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쿼크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증명한 공로였다. <세 개의 쿼크>는 이런 쿼크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김현철은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다. 원래 시인이 꿈이었다는 그는 전작 <강력의 탄생> 때부터 ‘이야기가 살아 있는’ 대중과학서를 선보이고 있다. <세 개의 쿼크>는 입자물리학과 핵력의 역사를 다룬 삼부작 가운데 두 번째 책이다. 19세기 말부터 숨 가쁘게 발전한 물리학은 원자가 가장 작은 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곤 전자, 양성자, 중성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세 입자면 원자를 만들 수 있었고, 원자는 다시 분자를 이루고, 분자로 물질을 창조할 수 있었다. 1947년 두 명의 영국인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입자 두 개를 우주에서 발견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 낯선 입자는 시작에 불과했다. 1962년까지 우주와 가속기에서 발견된 입자는 100개가 훌쩍 넘었다. 이 입자들이 쿼크라는 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을 거라고 이론으로 보여준 사람 중 한 명이 겔만이다. ‘쿼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겔만은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서 쿼크란 말을 따왔다. 물리학의 역사에 대한 책이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람’이고 ‘이야기’다. 어니스트 로런스, 프랭크 윌첵, 존 엘리스, 리정다오, 양전닝, 이휘소 등 수많은 물리학자가 세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