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떨어지게 틀어놓기도 해요" 한강이 사랑한 음악들

소설가 한강.
"그저 조용히 글 쓰고 싶다. "

소설가 한강(54)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런 소감을 전했다. 전세계의 호들갑 속에서도 이토록 차분히 자신 만의 속도를 지키는 한강의 내면에는 어떤 음악이 자리하고 있을까.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했을 당시 문학동네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던 그의 플레이리스트(즐겨듣는 노래 목록)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강은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라며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도 (글을) 다듬어 보고, 어떤 때는 귀가 떨어질 것처럼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그 속에서 제가 쓰는 글이 고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감각 속에서 (글을) 고치기도 한다"고 했다.
조동익-Lullaby(룰라바이)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당시 싱어송라이터 조동익의 2집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한강은 조동익의 동생인 조동희의 에세이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에 추천사를 쓴 인연도 있다. 그는 "(작곡가가) 제주에서 오랜 시간 살다가 음반 작업한거라, 제주의 소리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Lullaby(자장가)는 말그대로 눈을 감고 들으면 잠시 여행을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피아노 선율과 노래가 이어진다. 종종 들릴 듯 말듯한 저음역대 베이스는 심연의 감성을 끌어올리고, 가사 없이 '아'로 이어지는 음성은 마치 메아리가 울려퍼지는 듯 하다.

"저는 소설 쓸 때 이미지가 중요해요. 꼭 시각적인게 아니어도 이런 바람 소리같은 장면이면 좋겠다거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있잖아요. 그게 제 안에 있는 정서하고 만나서 '아 그래 이런거 쓰고싶었지' 문득 그걸 알게되는 순간이 있어요"

한강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기억에 새겨진 노래를 이야기한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를 내면서 부록에 담긴 앨범 속 10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이중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햇빛이면 돼’ 등 몇 곡은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AKMU(악뮤) -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작가 한강은 2021년 집필한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한 뒤 악뮤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언급했다.

한 작가는 "이 책 초고를 다 쓰고서 택시를 탔는데 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며 "'어떻게 내가/어떻게 너를/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다 마를 때까지/기다리는 게/이별일 텐데'라는 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면서 사연 있는 사람처럼 택시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바다가 다 마르는 것이 불가능하잖아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갑자기 막 사연 있는 사람처럼 택시에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이 곡을 쓴 악뮤의 이찬혁은 한 유튜브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해 "이별하고 가서 군대를 전역하고 나온 노래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곡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별의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한 곡이라고.
(c)유니버셜 뮤직
필립 글래스 - 피아노 에튀드 5번

필립 글래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미니멀리즘 사조의 대표 주자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반복이다. 수 차례 반복되는 프레이즈 안에서 조금씩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진행된다.

글래스의 피아노 에튀드 5번은 맑고 담백한 피아노 소리와 미니멀리즘 음악의 특징이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그는 이 곡을 즐겨듣는 곡으로 꼽으며 "모든 음악을 작업할 때 들을 수 있는 건 아닌데 이 곡에는 침묵이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곡은 멜로디 라인이 이어지는 곡이라기 보다는 단조 풍의 음형이 반복되며 다소 건조한 느낌을 자아낸다. 중간중간 공백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 일정한 박자, 일정한 음역대, 일정한 리듬 속에서 미묘한 변화와 충돌이 이어진다.
Arvo Pärt
아르보 패르트 -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

"너덜너덜할 때 들으면 좋은 곡. 글 쓸 때 말고 밖에서 많이 지치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거나 그럴 때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

아르보 패르트(89)는 에스토니아 출신 현대음악 작곡가로 그의 어린 시절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체제 하에 있었다. 무조음악, 불협화음 등 여러 음악적 실험을 하다가 소련에 염증을 느낀 그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신비와 그레고리안 성가, 폴리포니(다성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1970년대에는 미니멀하고 종교적, 명상적인 스타일의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거울 속의 거울은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의 의뢰를 받아 1987년 피아노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한 작품. 영화 '그래비티'(Gravity) 예고편에도 사용될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이다.

이 곡은 도미솔 3화음으로 이뤄진 음들이 반복되며 마치 거울을 보듯 대칭 무수히 반복되며 마치 대칭적이 8음계로 이루어진 음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마치 거울을 보듯 대칭적인 음형이 이어지며 명상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강은 "이 곡을 독일의 어떤 병원에서 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틀어주니까 경감됐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강이 소개한 음악 목록에는 이외에도 김광석 '나의 노래', 안드라 데이 'Rise Up', 오혁의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등이 있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로 나오는 곡이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