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쪼들렸던 도스토옙스키…허무에 시달렸던 톨스토이 [서평]


석영중 지음/위즈덤하우스
356쪽|1만9800원



석영중 지음/위즈덤하우스
308쪽|1만8000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매력은 돈이 전부인 세상을 직시하고 돈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돈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는 동시에 돈을 넘어서는 절대 불변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에서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책을 다수 번역한 석 교수는 한국에서 첫 손에 꼽히는 러시아 문학 전문가다. 그는 이 책에서 도스토옙스키 작품과 그의 삶을 살펴보며 ‘세계적인 대문호’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도스토옙스키가 당대의 다른 작가들과 달랐던 점은 항상 돈에 쪼들렸다는 점이다. 그는 러시아 민중을 교화하고 인류에게 신의 섭리를 전달하고 예술의 전당에 불후의 명적을 헌정하려는 거룩한 목적이 아니라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선불로 받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썼다. 즉 그는 팔리는 소설을 써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독자의 기호와 시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대 사회와 일반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 그에 부합하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놀라운 혜안으로 돈을 이해하고 당대뿐 아니라 미래의 인류 사회에서 돈이 수행하는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 보았다. 그의 소설은 현대적이고 통속적이다. 속물적인 소재인 돈을 살인, 치정과 함께 버무려 대중적인 추리 소설과 멜로 드라마의 기본 골격을 충실히 따른다.

한편 그는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돈이 지배하는 현실적인 관계를 그리는 한편 끊임없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관계를 꿈꾸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그리는 한편 돈이 다가 될 수 없는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그의 작품이 철저하게 이중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석 교수가 이 책과 함께 펴낸 <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톨스토이를 다룬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대척점에 있는 작가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살면서 돈 걱정 없이 소설 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엔 술과 도박을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중년기에 접어들며 기독교적 가치관에 깊이 영향 받아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로 변모했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안나 카레니나>다. 석 교수는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인생 전환기를 예고하는 작품”이라며 “사랑, 결혼, 종교, 윤리, 예술, 죽음, 인생에 관한 그만의 가치관이 다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설은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도덕적인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실이다.

톨스토이는 안나의 죽음을 통해 상류의 모든 것, 그들의 사고 방식과 습관, 생활 태도, 사랑과 연애, 결혼, 예술관과 음식까지 비판하며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 이후 톨스토이는 실제로 그가 소설 속에서 비판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고,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다. 90권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고,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제도를 부정했다. 언제나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금욕을 주장했고,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책은 이런 톨스토이의 고통스러운 모순이 남겨준, 시대를 초월하는 근본적인 가치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