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채권 선진국' 인정받은 한국…90兆 들어온다

세계국채지수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은 “세계국채지수 편입은 한국 경제의 견고한 펀더멘털과 높은 국가 신인도 덕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최혁 기자
한국이 세계 최대 채권 지수인 세계국채지수(World Government Bond Index, WGBI) 편입에 성공했다. 이 지수를 운영하는 업체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지난 8일 한국을 WGBI에 추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편입 시점은 약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1월부터다.

해외 투자자 뭉칫돈 유입 … 금리·환율 하락 기대

국채(國債)란 국가가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WGBI는 금융 선진국이거나 각 지역을 대표하는 25개 나라의 국채로 구성된 채권 지수다. 우리나라가 26번째로 정식 편입되면 전체의 2.22%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40.4%), 일본(10.2%), 중국(9.7%), 프랑스(6.7%), 이탈리아(6%), 독일(5.2%), 영국(4.8%), 스페인(4%)에 이어 아홉 번째다.이 소식이 시장의 관심을 받은 까닭은 어마어마한 돈이 걸려 있어서다. WGBI를 따라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글로벌 자금은 2조5000억~3조 달러(약 3400억~4000조 원)로 추정된다. 한국의 비중(2.22%)을 감안하면 70조~90조 원이 국내로 유입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정부의 1년치 국고채 순발행액과 맞먹는 규모다.

한국 국채를 사겠다는 주문이 몰려들면 가격이 오르게 된다. 채권은 가격과 금리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국채금리는 떨어진다. 금융연구원은 WGBI 편입에 따라 국채금리가 평균 0.2~0.6%포인트 내릴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채권을 사간 사람들에게 이자를 덜 줘도 된다. 기획재정부는 연간 최대 1조1000억원의 국채 이자 비용을 절감해 재정 운용 여력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채금리가 떨어지면 회사채를 비롯한 다른 채권 금리도 동반 하락할 여지가 크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도 낮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외국인이 보유한 달러가 대규모로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 역시 하방 압력을 받는다. 금리와 환율의 안정에 버팀목 역할을 하는 셈이다.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WGBI 편입을 추진해왔다. 일명 ‘선진 국채 클럽’으로 불릴 정도로 큰손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지수여서다. FTSE 러셀은 국채 발행 규모, 국가신용등급, 시장 접근성 세 가지를 본다. 한국은 발행 규모와 신용등급 요건은 일찌감치 충족했지만 시장 접근성에서 박한 평가를 받아 입성이 무산되곤 했다. 외국인들 눈에 ‘쇼핑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외신 “시장 접근성 높인 개혁이 주효”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금융당국은 FTSE 러셀의 지적을 받아들여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조치를 잇달아 도입했다. 외환시장 거래 시간 연장, 외국인 국채 투자 비과세,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 폐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2022년 9월 일종의 ‘후보군’ 자격인 관찰 대상국 지위에 오른 이후 네 번째 도전 끝에 목표를 달성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은 채권시장 개혁을 통해 WGBI 편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