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몰토크가 빅토크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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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미 테일트리 대표영어에는 ‘스몰토크(small talk)’라는 표현이 있다. 조용한 순간을 어색하지 않게 채우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가볍고 영양가 없는 대화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스몰토크가 없다면 깊이 있는 대화, 즉 ‘빅토크(big talk)’로 나아가기 어렵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서로가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데, 편안함은 스몰토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이라는 표현도 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어색함을 깨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스몰토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통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스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거나 날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스몰토크의 일환이었다. 영어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How are you?’라는 표현도 이런 스몰토크를 시작하는 기본 단계다. 특히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는 스몰토크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비즈니스 미팅에서도 적절한 유머와 함께 스몰토크를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대화를 점점 더 어려워한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도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낼 정도로 스몰토크조차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람과 바로 게임에 참여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 본 내용을 바로 공유해야 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공손히 인사를 나누거나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필요해 보일 수 있다. 자극적이고 빠른 정보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소소한 대화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쉽다.
반면 한국에서는 미국의 ‘디베이트(debate)’ 문화를 중요한 토론의 필수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날카로운 말들을 주고받는 훈련을 한다.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 대화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종종 진정한 문제 해결에서 멀어지게 한다. 미국으로 처음 이주했을 때 가장 큰 문화 충격 중 하나는, 심지어 광고에서도 경쟁사의 제품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자사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대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반대로 척박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에게도,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도 소소하더라도 긍정적인 말을 건네자. 작은 대화가 큰 대화를 끌어낼 수 있다.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문다. 스몰토크는 단순한 잡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빅토크로 안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