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북극의 빛'으로 그린 뭉크

어린 시절부터 마주한 공포
그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분투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백야(白夜). 단어로만 알고 있는 현상이다. 의미는 알고 있으나 경험치가 없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극야(極夜)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30 days of night)’는 1년에 30일 극야를 맞는 알래스카 배로우를 배경으로 뱀파이어에 맞서 목숨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름에는 절대 지지 않고 겨울에는 절대 뜨지 않는 태양의 빛, 북극의 빛’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에드바르 뭉크는 바로 그런 ‘북극의 빛’에서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찍어낸 사람이다.뭉크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절규’를 꼽아야 할 것이다. 어느 날 뭉크는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문득 불안에 빠져 걸음을 멈추고 만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본다. “나는 두 친구와 길을 걸었다. 해가 지자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멈춰 서서 죽음에 지쳐 울타리에 기댔다. 짙은 남빛의 피오르와 도시 위로 불타는 피의 혓바닥이 맴돌았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고 나는 불안에 떨며 뒤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이 자연 속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드바르 뭉크. 그는 평생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떨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규’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그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이 작품마저 자기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죽음이나 병에 가까이 있었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박봉의 군의관이던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빈민가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내와 사별하고 몸이 약한 아이들을 돌보며 아버지는 아마도 깊은 절망과 좌절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러나 뭉크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침대맡에서 늘 책을 읽어주었다. 죄와 형벌에 대한 이야기를. 또한 아이들을 돌봐주던 숙모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도록 지지하고 작품을 모아주었다. 어린 뭉크는 노르웨이의 이야기 속 요정과 천사들을 그렸다. 어쩌면 뭉크는 그 존재들을 그림으로써 가족들의 안녕과 건강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뭉크의 가족에게 짙게 드리운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큰누나 소피에가 열다섯 살에 병으로 세상을 뜨고 다른 아이들도 병에 걸린다. 병든 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뭉크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 ‘병든 아이’ 역시 단순히 병든 아이를 그린 그림이 아니다. 뭉크는 그 아이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뭉크의 작품들은 이런 배경을 지니고 있다. 백야와 극야가 번갈아 찾아오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 병으로 가족을 잃은 경험은 뭉크에게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뭉크의 내면은 ‘절규’뿐 아니라 ‘불안’ ‘병든 아이’ 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훗날 자신도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고, 여동생 라우라마저 정신병이 발병했으니 평생 그를 따라다닌 공포와 고통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우울과 마비와 환각과 알코올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서도 병실을 작업실로 쓰며 뭉크는 자기 삶을 견지했다. 결국 굳은 의지와 결심으로 모든 것을 이겨낸 뒤 퇴원했고 노르웨이로 돌아가 백마 루소와 몇몇 개들과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많은 것에 대한 공포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한 뭉크,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한 뭉크….

이 세상에서 그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계속 움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그래서 매혹적이고 두려운 오로라 같은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