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저출산에 잠재성장률 '발목'…"구조개혁 속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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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잠재성장률 '역전' 1년 빨라져…"선진국 못 따라잡는 '비수렴 함정' 우려"
尹정부, 혁신 생태계 강화·사회 이동성 제고 등 '역동경제' 드라이브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미국에 처음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노동시장 기반을 흔드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깎아내리는 위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뚜렷한 반전의 실마리는 '아직'이다.
빠듯한 나라살림 탓에 당분간 재정이 총요소생산성(TFP) 혁신의 과감한 마중물 역할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현 정부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한·미 잠재성장률 첫 역전…미국과 소득 격차 더 커질 수도
2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 우리나라의 2023·2024년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2.0%로 제시했다.지난해 6월 산정한 추정치(2023년 1.9%·2024년 1.7%)보다 모두 상향 조정된 것이다.
하지만 2020∼2022년 2.3∼2.4%를 기록한 점에 비춰보면 최근 하락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다.
반면 미국은 2020∼2023년 잠재성장률이 1.9%에서 2.1%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에도 작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잠재성장률 통계가 산정된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작년 한국을 추월한 데 이어 올해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OECD의 추정치와 비교하면 한국과 미국 잠재성장률 역전 시기는 1년 앞당겨졌다.
지난해 추정 때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1.7%)이 미국(1.9%)을 처음 밑돌 것으로 전망했지만 올해 추정 결과 작년 이미 '역전'이 시작됐다고 본 것이다.잠재 GDP는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이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 체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우리나라가 소득 수준이 더 높은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2022년 세계은행(WB)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5천990달러로 미국(7만6천370달러)의 47%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과 미국 간 잠재성장률의 역전은 앞으로 양국 간 소득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통 캐치업(catch-up)을 하는 국가는 후발자로서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라며 "한국이 생산성 격차 등으로 프런티어 국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른바 '비수렴의 함정'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생산인구 감소에 발목…혁신 투자 마중물 '재정'도 부족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의 발목을 잡는 주된 이유는 바로 저출산에 따른 생산연령인구 감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71.1%(3천674만명)에서 2072년 45.8%(1천658만명)로 급감할 전망이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7.4명에서 2072년 104.2명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측됐다.
홍콩(158.4명)과 푸에르토리코(119.3명)에 이어 3번째로 높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한국은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고 미국은 계속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라며 "인구가 줄면 성장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노동력 부족으로 힘이 빠진 성장 동력은 자본·기술 등 총요소 생산성 개선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총요소 생산성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기술 수준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통상 자본·노동 투입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가가치의 증가분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가파른 고령화 탓에 성장 잠재력의 개선도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공급 자체가 줄면 자본 투입에 대한 생산성도 줄어들어 자본의 성장 기여도도 함께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 연구들은 노동력 저하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극복하려면 총요소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인구가 줄고 인력이 고령화하는 시기에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 0.7%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尹정부, 역동경제 로드맵 시동…구조개혁 가속
재정 지원은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총요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의 필요 조건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역대급 세수 부족, 일관된 감세 기조로 당장 재정 여력이 많지 않은 점이 걸림돌이다.
반도체·이차전지 등 전 세계적인 기술 보조금 경쟁에도 2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R&D 예산은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내년 R&D 예산(29조7천억원)은 올해보다 11.8%나 늘지만 총량 기준으로 보면 2년 전인 지난해(29조3천억원)와 같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인구감소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대외 개방, 규제 합리화 등 경제 역동성 강화를 위한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 인력을 적극 수용하고 교육 개혁 등을 통해 인적 자본의 질을 높이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혁신 생태계 강화, 공정한 기회 보장, 사회 이동성 제고 등 3개 축과 하위 10개 세부 과제로 구성된 역동경제 로드맵을 제시하고 구조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기업 밸류업 지원, 정년 이후 계속고용 로드맵,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교육 시스템 혁신 등이 대표적인 추진 과제들이다.
정책 당국이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린 문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중장기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그 자체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하준경 교수는 "한국과 미국 간 잠재성장률의 역전은 구조개혁이 속도를 내야 함에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자꾸 해결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尹정부, 혁신 생태계 강화·사회 이동성 제고 등 '역동경제' 드라이브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미국에 처음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노동시장 기반을 흔드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깎아내리는 위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뚜렷한 반전의 실마리는 '아직'이다.
빠듯한 나라살림 탓에 당분간 재정이 총요소생산성(TFP) 혁신의 과감한 마중물 역할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현 정부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한·미 잠재성장률 첫 역전…미국과 소득 격차 더 커질 수도
2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 우리나라의 2023·2024년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2.0%로 제시했다.지난해 6월 산정한 추정치(2023년 1.9%·2024년 1.7%)보다 모두 상향 조정된 것이다.
하지만 2020∼2022년 2.3∼2.4%를 기록한 점에 비춰보면 최근 하락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다.
반면 미국은 2020∼2023년 잠재성장률이 1.9%에서 2.1%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에도 작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잠재성장률 통계가 산정된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작년 한국을 추월한 데 이어 올해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OECD의 추정치와 비교하면 한국과 미국 잠재성장률 역전 시기는 1년 앞당겨졌다.
지난해 추정 때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1.7%)이 미국(1.9%)을 처음 밑돌 것으로 전망했지만 올해 추정 결과 작년 이미 '역전'이 시작됐다고 본 것이다.잠재 GDP는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이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 체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우리나라가 소득 수준이 더 높은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2022년 세계은행(WB)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5천990달러로 미국(7만6천370달러)의 47%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과 미국 간 잠재성장률의 역전은 앞으로 양국 간 소득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통 캐치업(catch-up)을 하는 국가는 후발자로서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라며 "한국이 생산성 격차 등으로 프런티어 국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른바 '비수렴의 함정'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생산인구 감소에 발목…혁신 투자 마중물 '재정'도 부족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의 발목을 잡는 주된 이유는 바로 저출산에 따른 생산연령인구 감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71.1%(3천674만명)에서 2072년 45.8%(1천658만명)로 급감할 전망이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7.4명에서 2072년 104.2명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측됐다.
홍콩(158.4명)과 푸에르토리코(119.3명)에 이어 3번째로 높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한국은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고 미국은 계속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라며 "인구가 줄면 성장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노동력 부족으로 힘이 빠진 성장 동력은 자본·기술 등 총요소 생산성 개선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총요소 생산성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기술 수준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통상 자본·노동 투입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가가치의 증가분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가파른 고령화 탓에 성장 잠재력의 개선도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공급 자체가 줄면 자본 투입에 대한 생산성도 줄어들어 자본의 성장 기여도도 함께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 연구들은 노동력 저하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극복하려면 총요소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인구가 줄고 인력이 고령화하는 시기에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 0.7%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尹정부, 역동경제 로드맵 시동…구조개혁 가속
재정 지원은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총요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의 필요 조건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역대급 세수 부족, 일관된 감세 기조로 당장 재정 여력이 많지 않은 점이 걸림돌이다.
반도체·이차전지 등 전 세계적인 기술 보조금 경쟁에도 2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R&D 예산은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내년 R&D 예산(29조7천억원)은 올해보다 11.8%나 늘지만 총량 기준으로 보면 2년 전인 지난해(29조3천억원)와 같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인구감소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대외 개방, 규제 합리화 등 경제 역동성 강화를 위한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 인력을 적극 수용하고 교육 개혁 등을 통해 인적 자본의 질을 높이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혁신 생태계 강화, 공정한 기회 보장, 사회 이동성 제고 등 3개 축과 하위 10개 세부 과제로 구성된 역동경제 로드맵을 제시하고 구조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기업 밸류업 지원, 정년 이후 계속고용 로드맵,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교육 시스템 혁신 등이 대표적인 추진 과제들이다.
정책 당국이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린 문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중장기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그 자체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하준경 교수는 "한국과 미국 간 잠재성장률의 역전은 구조개혁이 속도를 내야 함에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자꾸 해결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