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단 피의사실부터 공표하고 보는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관련 사건 10건 중 6건에서 제재 결과를 당사자에게 알리기 전에 보도자료부터 배포했다고 한다. 혐의 확정 이전 단계에서 언론 플레이로 해당 기업을 불법 집단으로 매도하는 위법 행위로 볼 수 있다.

공정위는 2019년부터 올 8월까지 조사한 872건 중 512건(58.7%)에서 의결서 송부 전에 보도자료를 냈다. 이달 초 ‘택시 콜 차단’과 관련한 카카오모빌리티 사건에서도 의결서를 보내기 전에 보도자료를 통해 724억원의 과징금 부과 사실을 알렸다. 계열사 부당 지원 등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SPC(2020년)와 롯데칠성(2021년), 삼성(2021년), 이랜드(2022년) 등도 같은 일을 당했다. 심지어 한 기업은 보도자료가 나간 지 154일이 지난 뒤에야 공정위 의결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해당 기업은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공정위 보도자료만으로도 불법 집단으로 낙인찍혀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다.공정위의 이런 처사는 검찰로 치면 기소 전 수사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는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공정위 내부 규정엔 조사 관련 보도자료 작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한 줄도 없다. 이 때문에 공정위원장까지 의결 전 TV에 출연해 조사 내용을 버젓이 외부에 알리는 위법을 반복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의조사라고 하지만 현장조사라는 명분으로 법원 영장 없이 기업 자료를 마구 들여다보는 사실상 강제조사를 하고 있다. 공정위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공정위 조사 기간도 내부 승인으로 자유롭게 늘리는 게 가능하다. 공정위 조사 기간이 1년 반 이상으로 늘어져도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쟁점이 복잡한 독과점 조사엔 56개월이 걸려 주요국 중 세 번째로 오래 걸린다는 통계(영국 글로벌 경쟁 리뷰)까지 있다. 전방위적인 장기 조사를 통해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고 과징금을 매겨도 법원에선 대형 사건 중심으로 줄줄이 패소하고 있다.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무소불위’ 공정위 조사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