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업재편 재시동 건 두산…에너빌리티 '개미 구하기' 묘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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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21일 이사회두산그룹이 원전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한 사업 재편안을 재가동한다. K원전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 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 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 이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산정됐다는 ‘개미’ 투자자와 금융당국의 지적을 수용해 절충안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밥캣을 로보틱스에 넘기는 대가로 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이 받는 로보틱스 주식을 당초보다 크게 늘리는 ‘묘수’를 낸 것이다.
두산밥캣 넘기는 에너빌 주주들
기존보다 신설법인 가치 높아져
두산로보틱스 주식 더 받게 돼
"금감원과 소통…새로운 案 나와"
절충안 통해 미래 성장 가속페달
밥캣-로보틱스 합병 계획 없어
21일 이사회 여는 두산그룹
20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21일 그룹 사업 재편을 위한 에너빌리티와 로보틱스 이사회를 각각 연다. 지난 7월 발표한 사업 재편안과 구조는 동일하다. 다만 신설법인과 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을 대폭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기존 1 대 0.031에서 약 30% 오른 1대 0.04 안팎으로 합병 비율이 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이렇게 되면 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가 받을 수 있는 로보틱스 주식이 3.1주에서 4주 안팎으로 늘어난다. 업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금융당국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새로운 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두산은 이사회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달께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사업 재편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다만 밥캣을 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한 뒤 두 회사를 합병하는 방안은 당분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투자자 비판 수용해 절충안 내놓을 듯
두산의 사업 재편 방안은 애초 취지와 달리 시장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3년 연속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린 밥캣의 모회사가 되는 신설 법인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됐다는 이유에서다. 두산은 신설 법인의 평가 방식으로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가치 40%와 수익가치 60%를 가중평균해 구하는 본질가치법을 활용했다. 문제는 답이 정해진 자산가치가 아니라 수익가치 부문이었다. 두산은 신설 법인의 수익가치를 밥캣의 배당금 등 미래 수익으로 잡지 않고 기준시가(두산밥캣 주가)를 적용해 산정했다. 시가에는 이미 회사의 미래 현금 흐름과 기대 배당수익이 반영돼 있다는 이유였다.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이런 평가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주주가 아니라 대주주를 위한 사업 재편이란 비판도 내놓았다. 동시에 현금흐름할인법·배당할인법 등 미래 수익을 반영한 방법을 적용하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평가 방식이 법으로 정해진 상장사 로보틱스 대신 비상장사인 신설 법인을 손보는 방식으로 주주 이익을 높이라는 것이 금감원이 제시한 절충안의 골자다. 두산그룹은 이에 따라 현금흐름할인모형(DCF)과 배당할인모형(DDM) 등 미래 수익을 반영한 가치평가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지주사인 ㈜두산의 로보틱스 지분율이 원안 대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주주 이익을 높이기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단기 이익 대신 그룹 미래 택했다
두산그룹이 절충안을 통해 사업 재편에 재차 시동을 건 이유는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미래 성장을 위해서다. 에너빌리티는 최근 체코 원전 수주를 포함해 5년간 유럽 등지에서 10기 내외의 신규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설비 증설은 필수다. 현재는 자회사인 밥캣의 차입금이 7200억원에 달해 자금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밥캣 차입금 감소와 자산 추가 매각을 통해 1조원 이상의 추가 투자 여력이 생길 것”이라며 “원전 설비 투자 등을 적시에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주주 설득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밥캣도 정부 성향과 수주 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었던 모회사 에너빌리티와 관련 없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다. IB업계 관계자는 “탈원전 여파로 모회사인 에너빌리티가 어려움을 겪자 밥캣이 투자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새로운 모회사인 두산로보틱스와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룹은 로보틱스와 밥캣이 힘을 합쳐 무인 건설 장비 시장 개척에 나서는 전략을 짜고 있다. 영업망이 부족한 로보틱스의 경우 밥캣이 북미에 보유한 딜러망을 함께 활용할 예정이다.
김우섭/차준호/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