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도자료부터 뿌린 공정위…기업은 반론 기회조차 없었다
입력
수정
지면A1
의결 前 조사 내용 무차별 공개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불공정거래 등 기업 제재 사건을 다루면서 위원회의 결론이 나기 전에 보도자료부터 배포한 사례가 10건 중 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한 사실상의 ‘피의사실 공표’로, 기업은 반론권도 얻지 못한 채 이미지 실추 등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업비밀 노출되고 이미지 실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5년여간 보도자료를 배포한 기업 조사 872건 중 512건(58.7%)은 위원회 의결 전 보도자료가 나왔다. 공정위는 통상 조사가 끝나면 소회의나 전원회의에서 제재 수위 등을 의결한 뒤 기업에 의결서를 보낸다. 기업은 의결서를 받는 시점에 ‘피심인’이 된다. 형사 사건으로 치면 피의자가 되기도 전에 제재 내용과 과징금 등이 외부에 알려져 ‘여론 재판’을 받는 셈이다.이달 초 공정위가 ‘콜 차단’을 이유로 7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힌 카카오모빌리티도 아직 의결서를 받아보지 못했다. 경쟁 업체 소속 택시에는 승객 콜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내용이 언론 지면을 장식했지만, 정확한 의결 내용은 안갯속이다. 5년간 보도자료가 배포된 기업 사건은 자료 배포 후 위원회 의결까지 평균 10.8일이 걸렸다. 자료가 나온 뒤 154일이 지나서야 의결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이 기간 기업들은 반론도 못 한 채 ‘악덕 기업’으로 낙인찍힌다. 행정 소송 등 불복 절차는 의결서 송달 이후에 할 수 있는데, 제재 사실이 미리 알려져 공정위에 유리한 여론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윤 의원은 “공정위가 조사 성과를 알리기에만 급급해 정작 의결서 작성은 뒷전”이라며 “과징금, 시정조치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만큼 피심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소람/이슬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