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완전히 새로운 신화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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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뤼페르츠대전 동구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자갈이 깔린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물감을 칠한 헤라클레스가 관객을 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성경 속 일곱 가지 죄악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 재현된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 속 세계가 대전에 펼쳐졌다. 대전 헤레디움에서 열린 마르쿠스 뤼페르츠 개인전 ‘죄와 신화, 그리고 다른 질문들’에서다.
獨 신표현주의 거장 첫 개인전
그리스 신화·성경 주제로 작업
대전 헤레디움서 내년 2월까지
뤼페르츠는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 작업을 펼친다. 작품에 특별한 메시지나 의미를 담기보다 색감, 질감, 구상 등 회화 그 자체에 집중한다. 1990년대 동시대 독일 작가들이 조각에 몰두할 때도 회화만 파고든 외골수로 잘 알려졌다. 그가 국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관객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84세인 그는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독일에서 한국을 찾았다.뤼페르츠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고전 신화 등을 빌려 작품을 만든다. 제우스, 포세이돈 등 신화 속 인물과 죄, 구원, 부활 등 성경 속 이야기가 작업에 자주 나타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주로 신화와 성경을 재료로 삼은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한 가지 내용을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릴 당시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성경의 같은 대목을 그린 여러 개의 시리즈 작품, 한 인물을 모두 다르게 다룬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그가 같은 주제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는지 직관할 수 있다. 특히 님프 요정을 다룬 그림을 나란히 배치했는데, 두 그림은 같은 형상을 그렸다고는 상상되지 않을 만큼 다른 도상을 보인다.
그의 그림은 직관적이다. 형상마다 단순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성경 속 일곱 가지 죄악을 담은 그림에 나타난 달팽이는 굼뜬 시간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소의 뼈는 죽음을 뜻한다.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문양도 그림에 숨겨뒀다. 21세기 폭스 영화사 로고에서 따온 형상이다. 이 문양 이름을 ‘디티람브’로 붙였다.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다’는 의미를 담았다.이번 전시에서는 뤼페르츠의 조각 작업도 만날 수 있다. 그가 만든 조각의 특징은 모두 색을 입혔다는 것. 조각 자체를 설치작보다는 하나의 빈 캔버스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작업도 소개된다. 1990년대 작업으로, 당시 뤼페르츠가 애용하던 색만 팔레트처럼 캔버스 위에 모아 놓은 작품들이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대전=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