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완전히 새로운 신화가 펼쳐졌다

마르쿠스 뤼페르츠

獨 신표현주의 거장 첫 개인전
그리스 신화·성경 주제로 작업
대전 헤레디움서 내년 2월까지
대전 동구 헤레디움에서 열리는 마르쿠스 뤼페르츠 개인전. 2010년 작 조각 필로소퍼(가운데), 2020년 작 회화 다프네(왼쪽)와 레드 클로스(오른쪽). /헤레디움 제공
대전 동구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자갈이 깔린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물감을 칠한 헤라클레스가 관객을 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성경 속 일곱 가지 죄악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 재현된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 속 세계가 대전에 펼쳐졌다. 대전 헤레디움에서 열린 마르쿠스 뤼페르츠 개인전 ‘죄와 신화, 그리고 다른 질문들’에서다.

뤼페르츠는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 작업을 펼친다. 작품에 특별한 메시지나 의미를 담기보다 색감, 질감, 구상 등 회화 그 자체에 집중한다. 1990년대 동시대 독일 작가들이 조각에 몰두할 때도 회화만 파고든 외골수로 잘 알려졌다. 그가 국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관객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84세인 그는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독일에서 한국을 찾았다.뤼페르츠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고전 신화 등을 빌려 작품을 만든다. 제우스, 포세이돈 등 신화 속 인물과 죄, 구원, 부활 등 성경 속 이야기가 작업에 자주 나타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주로 신화와 성경을 재료로 삼은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한 가지 내용을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릴 당시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성경의 같은 대목을 그린 여러 개의 시리즈 작품, 한 인물을 모두 다르게 다룬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그가 같은 주제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는지 직관할 수 있다. 특히 님프 요정을 다룬 그림을 나란히 배치했는데, 두 그림은 같은 형상을 그렸다고는 상상되지 않을 만큼 다른 도상을 보인다.

그의 그림은 직관적이다. 형상마다 단순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성경 속 일곱 가지 죄악을 담은 그림에 나타난 달팽이는 굼뜬 시간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소의 뼈는 죽음을 뜻한다.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문양도 그림에 숨겨뒀다. 21세기 폭스 영화사 로고에서 따온 형상이다. 이 문양 이름을 ‘디티람브’로 붙였다.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다’는 의미를 담았다.이번 전시에서는 뤼페르츠의 조각 작업도 만날 수 있다. 그가 만든 조각의 특징은 모두 색을 입혔다는 것. 조각 자체를 설치작보다는 하나의 빈 캔버스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작업도 소개된다. 1990년대 작업으로, 당시 뤼페르츠가 애용하던 색만 팔레트처럼 캔버스 위에 모아 놓은 작품들이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대전=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