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금융 내부통제의 디지털화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1935년 10월, 미군의 차세대 폭격기 후보로 시험 비행 중이던 보잉의 모델299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항공 장치가 복잡해진 탓에 이륙 전 잠금장치 해제를 잊어버린 파일럿의 실수였다. 보잉은 파일럿들이 꼭 확인해야 할 항목을 기재해 비행 시 점검하도록 했다. 이것이 내부통제의 기본인 체크리스트의 시초다.

최근 금융회사의 잇단 횡령 사고로 금융당국은 임원별 책무구조도 작성 등 강도 높은 내부통제를 주문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수행 업무와 회계관리는 물론 공공기관운영법 등에 따라 윤리경영, 인권보호와 같은 다양한 기준을 준수해야 하므로 민간 이상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특히 18조원 넘는 기금을 관리하고 부실 금융회사 정리 등을 통해 금융 안정에 기여하는 예금보험공사 같은 기관은 더 그렇다.예보는 2022년부터 고품질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해왔다. 리스크통제부서 신설 등으로 현업 부서, 내부통제실, 감사실로 이어지는 국제표준 3선 방어체계를 완비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권한에 비례한 역할과 책임을 규정했으며, 이사회 내에 내부통제위원회를 설치해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했다.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내부통제 개선 노력을 차등보험료율제도에 반영해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내부통제의 성공 요인은 직원들이 1차 방어선으로서 내부통제의 필요성에 공감해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책별로 신설·누적돼 부서별로 운영해온 내부통제 규율은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 예보는 통합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2000여 개 체크리스트 중 중복 항목을 정비해 428개로 대폭 줄임으로써 직원 업무 부담을 낮췄다.

또 이런 체크리스트들이 업무 과정에서 자동으로 점검되고 모니터링될 수 있으려면 인공지능(AI) 등 디지털기술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예보는 직원들로부터 지속적인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디지털 전환 사업을 통해 정보기술(IT) 내부통제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업무 시스템별 자동 통제가 가능한 부분을 찾고 디지털 내부통제 전환 로드맵을 마련해 새로운 통합 내부통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파일럿이 비행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복잡해지는 항공기를 수동으로만 제어하기는 어려워 현대 항공기 조종은 대부분 자동비행통제시스템(AFCS·automatic flight control system)의 도움을 받는다. 예보 역시 디지털화를 통해 자동내부통제시스템(AICS·automatic internal control system)을 구축해 직원들이 더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