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공격, 5년새 10배 늘어…기업가치 훼손 심각"

한경협, 美 상장사 970곳 분석

공격 뒤 고용 5.6%·투자 10%↓
기업들 "지배구조 규제 멈춰야"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공격이 단기적으로는 기업가치 상승을 ‘반짝’ 끌어낼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를 끌어내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행동주의 공세가 기업의 중장기 주가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는 보고서다. 펀드 운용 규모가 4조원에 달하는 기관투자형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서는 등 재계는 거액의 연기금 자금을 등에 업은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 시장 상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1일 한국경제인협회는 2000년 이후 행동주의 펀드 공격을 받은 미국 970개 상장사(시가총액과 자산 10억달러 이상)를 대상으로 기업가치 변화를 분석했다. 한경협은 행동주의 캠페인의 중장기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행동주의 요구가 관철된 기업 549곳과 받아들여지지 않은 기업 421곳의 기업가치, 고용, 투자 규모를 비교했다.

한경협에 따르면 행동주의 요구가 관철된 기업들은 기업가치가 1~3년 뒤 1.4%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4년 이후에는 캠페인 성공 이전보다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당, 자사주 매입 등에 돈을 투입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이 고갈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경협이 분석한 기업들은 행동주의 공세 이후 고용이 1~2년 만에 평균 3% 줄었고, 장기적으로는 5.6% 감소했다. 자본투자도 행동주의의 공격을 받기 전보다 10% 넘게 감소했다.

해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202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HEC파리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목표로 삼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 대비 기업가치가 처음 1년간은 7.7% 상승했지만, 5년 뒤에는 9.7% 하락하고 고용 인원과 연구개발(R&D) 투자도 각각 7%, 9% 감소했다.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에만 유리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행동주의 공세의 목표물이 된 한국 기업은 2019년 8개에서 2023년 77개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가치를 본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 비용을 낭비하는 것을 막고 투자, 고용 등 본업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