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저질러야 두려움을 이긴다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간다. 할까 말까 머뭇거릴 때는 한다. 줄까 말까 미적댈 때는 준다. 내가 지키는 원칙이다. 실패에 따른 후회가 해보지 않은 후회보다 적기 때문이다. 실패 후회는 뼈저린 자책과 극심한 절망감을 안겨주어서다. 더욱이 후회는 오래가고 다른 일에도 절망감이 이어진다. 그러나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사지 않는다. 말할까 말하지 말까 멈칫할 때는 말하지 않는다. 먹을까 말까 주저할 때에는 먹지 않는다. 쓸까 말까 주춤할 때는 쓰지 않는다. 후회가 적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주로 하지 말라는 쪽이었고 아버지는 ‘먼저 저질러라’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서슴다’였다. 서슴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라는 뜻이다. 말끝마다 아버지는 ‘서슴지 말고 먼저 저질러라’라는 말씀을 내가 어릴 때부터 많이 했다.저 말씀을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2학년쯤부터다. 동네 부인 계모임에 다녀온 어머니는 만취 상태여서 여럿이 부축해 집에 오셨다. 술주정이 심했다. 처음 보는 일이라 동생들도 놀랐지만, 아버지는 더 놀랐고 곤혹스러워했다. 자리를 펴고 눕게 했지만, 어머니는 바로 일어나 토하고 소리를 질렀다. 노래도 했다가 울기도 하고 안 보이는 동생이나 아버지를 찾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버지는 내게 저녁밥을 하라고 했다.

부엌에 들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릴 때 아버지가 안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쪽문을 열고 소리쳤다. “서슴지 말고 먼저 저질러라.” 그래도 우두커니 있자 “밥하는 거 그동안 봤지 않느냐? 그대로 해라. 머릿속으로 밥 짓는 일을 먼저 그려봐라”라고 했다. 순간이었지만, 어머니가 하신 게 생각나 그대로 따라 할 때 아버지는 틈틈이 추가할 것을 지시했다. 그날 그렇게 밥상을 처음 차렸다.

며칠 뒤 아버지가 불러 “이젠 밥 잘하겠구나”라고 칭찬했다. 처음 하는 일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따른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 대부분은 알지 못해 생기는 ‘미지의 두려움’이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지의 두려움은 안개와 같다. 보이지 않을 장애물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걷히겠지만, 안개 속으로 들어가야 그 안에 있는 길을 볼 수 있다. 들어가지 않고 바라만 보면 두려움만 커진다. 아버지는 “그때는 서슴지 말고 먼저 저질러라. 저질러야 두려움을 이긴다”라고 강조했다.이어 “안개 속에 길이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는 이에게 물어보고 과정을 반드시 그려보아야 한다”면서 “일의 결과는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조언을 받아 실패를 꼭 그려보고 대책을 세워라”라고 했다. 밥 짓는 일이 실패해 설익은 밥이 되면 다시 지으면 될 일이고, 물 조절이 잘못돼 고두밥이나 진밥이 되면 그대로 먹으면 될 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말을 마칠 즈음 아버지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고사성어를 말씀하셨다. ‘다섯 리(里)나 되는 안개 속’이라는 말이다. 일의 진행을 예측할 수 없음을 뜻한다. 아버지는 "가시거리 200m 이하의 짙은 안개는 ‘농무(濃霧)’, 약한 안개는 박무(薄霧)다. 안개 속에서도 길을 볼 수 있다"고 몇 번 말씀했다. 저 성어는 후한서(後漢書)에 나온다. 후한 순제(順帝) 때 인품이 훌륭하고 학문이 깊어 사방에 이름이 높았던 장해(張楷)가 다섯 리의 안개를 만드는 도술을 만들었다고 한다[張楷 性好道術 能作五里霧]. 황제가 명성을 듣고 여러 번 데려오려고 했지만, 그는 간신배들과 다투고 싶지 않아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훗날 “장해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안개를 피웠다. 길은 안갯속에 언제나 있다”고 내가 멈칫댈 때마다 수없이 일깨웠다.

살며 맞닥뜨리는 두려움은 그날 이후 아버지 말씀대로 ‘저지리’해 이겨냈다. 그때부터 버릇이 됐다. 아버지는 “다리를 다쳐 나는 ‘저지리’ 할 수 없었다. 네 할아버지도 엄한 당신의 할아버지 밑에서 훈육을 받아 ‘하고 싶은 일’을 못 했다고 후회하셨다”라면서 진취성(進取性)을 갖추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하는 성질이 진취성이다. 낯선 일에는 언제나 주춤하는 손주들을 볼 때면 조심성이 어여뻐 보이지만, 자칫 진취적인 인성이 손상될까 두렵다. 심장에서 용기가 나온다고 굳게 믿은 아버지는 손주를 왼쪽으로 눕히는 걸 극도로 말리며 진취성을 키워줬는데...<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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