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빳빳 자만 말고 서릿발 딛듯 신중하라" [고두현의 문화살롱]

■ 상강(霜降) 아침에

서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서릿발은 밑에서 위로 솟는다

찬서리 속에 피는 국화의 절개
겉모습·향기보다 정신 더 빛나

남에게는 봄바람같이 부드럽고
나에겐 가을서리처럼 엄격해야

고두현 시인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뭇가지에 서리가 내리고 땅에는 서릿발이 돋았다. 이럴 때 옛사람들은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는 경구를 되새겼다.
벌써 상강(霜降)이다. 서리(霜)가 내리기(降) 시작하는 절기. 이맘때면 온갖 수풀이 시들고, 나뭇잎은 푸른빛을 잃는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비움의 과정이기도 하다. 쇠락의 계절에는 배울 게 많다. 처음 내리는 서리는 ‘첫서리’, 평년보다 빨리 내리는 서리는 ‘올서리’라고 한다. 올해 설악산에 내린 첫서리는 예년보다 빠른 올서리다.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는 ‘무서리’라고 부른다. 서정주 시 ‘국화 옆에서’의 무서리가 이때쯤 내리는 서리다. 늦가을에 되게 내리는 ‘된서리’, 강하게 내리는 ‘강서리’도 있다.

겸허함을 일깨우는 삶의 역리

서리는 공기 중의 습기가 땅이나 물체에 흰 가루처럼 얼어붙은 것으로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 비유적으로는 ‘타격’이나 ‘피해’, ‘힘없고 굼뜬 사람’ ‘세력이 다해 좌절한 사람’을 나타낸다. ‘서리 내리다’ ‘서리 앉다’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다’를 뜻하고, ‘서리를 맞다’는 ‘큰 타격으로 몹시 풀이 죽다’를 뜻한다. ‘서리 병아리’는 기력이 없고 행동이 둔한 사람을 일컫는다.서릿발은 서리와 달리 땅속 수분이 얼어 뾰족하게 솟아난 얼음 조각들이다. 이것이 흙을 들어 올려 식물 뿌리를 상하게 하므로 더 큰 피해를 입힌다. 생성 원인도 달라서 서리는 공기 중의 수증기, 서릿발은 땅속 수분 때문에 생긴다. 한마디로 서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서릿발은 밑에서 위로 솟는다. 어감도 서릿발이 서리보다 강하다.

몇 해 전 어느 날 아침, 자고 나니 서릿발이 하얗게 솟아 있었다. 바쁜 출근길에 무심코 서릿발을 밟았다가 ‘바삭’ 하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균형을 잃고 미끄러질 뻔한 탓도 있지만, 발아래 땅속 사정을 살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날 ‘상강(霜降) 아침’이라는 시를 썼다. 처음엔 제법 긴 시였지만 퇴고 과정에서 아주 짧아졌다.

‘발밑 어두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다/ 바삭,/ 서릿발/ 밟은 아침// 아뿔싸,/ 지금/ 땅속으로/ 막 동면할 벌레들/ 숨어드는 때 아닌가.’이 시를 발표하고 난 뒤, 다른 분들이 써 준 감상평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새로운 관점과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연이어 얻었다. 문태준 시인은 신문 칼럼에서 “겨울잠을 자기 위해 벌레들이 땅속에 들 때여서 혹여 해를 입히지 않았을까 시인은 몹시 염려하면서 이 일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닌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아 자신의 성품이 주제넘게 거만하거나 억세지 않은지를 반성하고 있다”며 “시인이 밟은 그 서릿발이 땅속을 날카롭게 찔렀을 것”이라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해줬다.

손택수 시인은 “서릿발을 밟는 일상적 행위가 타자의 발을 밟는 낯선 느낌을 환기시키는데, 일상의 포도를 밟는 습관이 ‘바삭’ 하는 순간적 경험과 함께 ‘아뿔싸’ 하는 성찰을 부르면서 ‘고개 빳빳이’ 쳐든 수직적 우월감으로부터 풀려나는 화자를 엿볼 수 있다”며 “인간과 비인간의 완고한 경계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감각”의 이면을 일깨워줬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오만하게 걷다가 미끄러지는 인간의 마음 반대편에서 잔광을 한껏 뿌리며 상강 아침에 문득 바라본 형상을 통해 우리가 낮고 겸허하게 살아야 함을 장엄한 삶의 표지로 제시한다”며 그 안에 숨은 “서늘하고 따듯한 역리(逆理)”(<문학의 오늘> 2022. 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줬다.이들이 비춰 준 사유의 거울을 통해 ‘땅속을 날카롭게 찔렀을 서릿발’과 이에 따른 성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의 그늘, ‘서늘하고 따듯한 역리’와 겸허한 삶의 자세를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조지훈 시인은 서릿발과 국화의 대비로 인생의 단면을 그려 보이곤 했다. 그의 수필 ‘무국어(撫菊語)’에 ‘서릿발이 높아지자 국화는 더욱 청초해 가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땅속의 차가운 서릿발과 땅 위의 꿋꿋한 국화를 통해 삶의 비의(秘義)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의 표현처럼 국화는 서릿발 속에서도 의연히 꽃을 피우는 군자와 절개의 상징이다. 서리를 맞아야 비로소 향기를 뿜는 게 국화다.

자신을 다스릴 땐 더욱 엄하게

조선 후기 대제학을 지낸 이정보는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상고절은 매서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는 충신, 국화를 가리킨다.조선 전기 송순의 시조는 한층 더 의미 깊다. 찬바람 부는 가을밤에 임금이 노랗게 핀 국화를 화분에 담아 홍문관으로 보냈다. 밤중에 임금의 꽃을 받은 신하들은 놀랐다. 화답하는 글을 지었는데 송순의 시조가 가장 뛰어났다. ‘풍상(風霜)이 섞어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이온 양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도리(桃李)’는 따스한 봄볕에 쉽게 피고 지는 복숭아꽃과 오얏(자두)꽃, 국화는 찬바람과 서리를 뚫고 피며 온갖 시련과 강압에도 굽히지 않는 충신을 말한다. 흔들리는 봄꽃 말고 꿋꿋한 가을 국화가 되라는 뜻이니, 임금이 국화를 내린 이유를 그 속에 담긴 정신에서 찾은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의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은 남을 대할 때 봄바람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는 말이다. 줄여서 ‘춘풍추상’이라고도 한다. 요즘 세태와 정치판을 보면 남에게는 서릿발처럼 엄혹하면서 자신에겐 봄바람같이 대하는 사람이 많다.

서슬 퍼런 추궁 앞에서는 모두가 몸을 사린다. 하지만 진정한 힘과 품격은 서릿발이 아니라 서릿발 돋은 흙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걸음을 딛는 신중함과 겸허함에서 나온다. 상강 아침을 맞아 다시금 생각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와 자연의 섭리에서 배우는 교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고개 빳빳이 들고 자만하지 말고, 서릿발 딛듯이 신중하게 살라”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