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여야의정협의체 전격 참여…8개월여 만에 대화 '물꼬'

"의료공백 더이상 안된다"
휴학 승인·의대 정원 등 논의 제시
한동훈 "사태 해결 출발점 될 것"

"의견 조율 없이 독자적인 결정"
전공의·의대생 등 내부 반발도
대학병원 교수가 주축인 의사단체들이 정부·정치권과 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2월 이후 8개월 넘게 이어진 의료 공백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화 물꼬는 텄지만 갈 길은 멀다는 평가다. 의료계에선 벌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 단체 대표들은 불참 입장을 밝혔다.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는 22일 “의료 정상화를 위해 백척간두의 절박한 심정으로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하기로 결단했다”고 발표했다. 의료계에서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선언이 나온 것은 지난달 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지 46일 만이다.
18일 서울의 한 대형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로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110개 의료 관련 학회가 속한 대한의학회는 전공의 수련 교육을 맡은 교수들이 주축이다. 의대협회는 의대생 교육을 담당하는 의대 학장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협의체에서 의대생 휴학계 허가, 2025·2026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논의 및 의사정원 추계 기구 입법화, 의대생 교육 및 전공의 수련기관 지원,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독립성 보장,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개편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의 선언에 의료 공백 사태 해결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한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의료 상황을 해결할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의대 학사 운영과 의평원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의료계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한 대표와 81분가량 면담했다. 의제 중엔 의정 갈등 해소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면담이 의학회·의대협회와의 대화 물꼬를 트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의료대란이 내년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의료계 내부의 절박함도 이들의 결정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올해 의사국가시험 지원자는 347명으로 지난해 3212명의 10.8%에 불과하다. 실기시험 합격자는 지난해의 8.7% 수준이다. 내년 1월 필기시험이 남았지만 이대로면 배출 의사가 예년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내년 전문의 배출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은 올해 4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개특위 참여를 거부해왔다.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명분’ 탓이지만 제도가 그대로 굳어지면 자칫 의료계 뜻과 다른 개혁을 방관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가 시작돼도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는 것은 한계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정호·김서영·조주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은 이날 “허울뿐인 협의체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학회 내부에서도 “의견 조율 없이 이진우 회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다”는 반발이 쏟아지자 의학회는 이날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교수들도 입장이 엇갈렸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 교수비대위원장은 “논의가 잘 이뤄져 의료체계가 하루빨리 건강해지기를 바란다”며 이들의 결정을 응원했다. 다른 빅5병원 소속 교수는 “의대생과 전공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일부 교수의 정치적 행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협의체 불참을 재차 강조한 의협은 이날 “의학회와 의대협회의 참여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의료계 전체 의견이 잘 표명될 수 있도록 신중한 논의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