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마지막 앨범" 다시 스무 살이 된 전설의 가왕,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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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헬로' 이후 11년 만에 정규앨범 '20'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 가왕(歌王) 조용필(74)이 11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7곡이 담긴 정규 20집 앨범 ‘20’을 낸 조용필은 “정규 앨범으로는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스무 번째 앨범이 끝이 될 것임을 시사했지만, 곡들을 들어보면 마치 다시 20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강하다. 사랑과 고독을 주제로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한 시대를 위로했던 그가 이번엔 록, 일렉트로니카, 발라드를 가로지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22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정규 20집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마지막 앨범 이후 공백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앨범을 하나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지금까지 내 곡은 모두 미완성이었다”고 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막상 곡을 발매하고 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는 얘기다. 1969년 미8군 무대에서 그룹 ‘파이브 핑거스’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55년차. 그는 “지금도 무대 뒤에서 늘 떨리고, 무대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하다. 노래라는 건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는 임희윤 음악평론가의 진행으로 열렸다.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로 컴백
록, 일렉트로니카, 발라드 넘나드는 장르 실험
"노래로 위로 받은 나, 내 노래로 위로 전하고 싶다"
타이틀곡 '그래도 돼' ...승부서 진 패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정규앨범으로 마지막, 노래할 수 없을 때까지 노래할 것"
이번 앨범의 첫 곡이자 타이틀곡은 ‘그래도 돼’다. 이 시대 모든 이를 위한 응원가인 셈이다. 노래는 말한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자신을 믿어 믿어봐/지금이야’. 청량감 있는 색채와 전자기타가 어우러지며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라 전한다.
“음악이라는 게 그렇죠. 옛날 노래 들으면 우리 마음을 북돋아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곡이 많았어요. 저도 그렇게 위로 받았고요. 나의 음악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그래도 돼’는 올 봄 한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승자에게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장면을 보며 떠올린 곡이다. 끝까지 승부를 다투다 우승을 놓친 선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카메라 뒤편의 선수들 마음은 어떨까 상상하게 됐다고. 그는 ‘꿈’(1991)을 만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꿈을 작곡했을 때도 비행기 안에서 신문사 사설을 보고 요즘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청년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쓴 곡이었죠. 지금도 다르지 않나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박근형, 이솜, 전미도 등이 출연했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돌고래유괴단의 이주형 감독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유치해지리만큼 깜깜한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그런데도 당신을 응원하는 음성과 시선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타이틀곡 외에 ‘찰나’ ‘타이밍’ ‘세렝게티처럼’ ‘필링 오브 유’ ‘라’ 등 다수의 곡이 밝고 화사하다. 가장 많은 시간 연습해 공들인 곡은 ‘왜’다. 서정적인 발라드 곡으로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는 곡. 몽환적인 속삭임과 차분한 건반 연주로 시작된 악곡은 단조와 장조,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조용필 창법의 정수를 보여준다. 욕심 많은 혁신가, 조용필
이번 앨범은 20이란 숫자에 담긴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된다. 누구나 스무 살이었고, 어쩌면 가장 뜨겁게 생동하는 나이다. 조용필의 음악 실험은 반세기 넘게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트로트(허공), 팝(정글시티), 발라드(슬픈 베아트리체), 민요(한오백년), 오페라(도시의 오페라), 일렉트로닉(바운스)까지 한국에서 음악적 실험을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중요한 건 그 다채로운 장르들이 모두 인기를 끌었다는 것. 진성, 탁성, 가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가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나온 때가 1980년대에요. 그때 처음으로 ‘뿅뿅뿅’하는 소리의 전자음이 쓰였죠. 전자상가에서 전자드럼을 보고 스튜디오에 가져와 개조해 쓴 음이에요.”
조용필은 이날 한 시간 여에 걸친 기자간담회에서 ‘나이’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 그는 “목소리가 과거와 같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 등장하는 모든 코러스 파트까지 모두 혼자 소화할 만큼 여전한 실력을 자랑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건 완벽주의자로서의 면모다. 미국 스튜디오 및 믹싱 엔지니어와 함께 작업한 이번 앨범은 수정 작업을 18번 이상 거듭했다. 결국 그 엔지니어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한국 스튜디오를 찾아오기도 했다. 50년 음악 인생을 관통하는 조용필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도전이죠. 해보고 싶은 욕망이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아마 다 이루지 못하고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과 스튜디오밖에 모르고 살아요. 음악밖에 모른다는 말이 어쩌면 맞겠지요. 나에게 꿈이 있다면, 그저 오래 노래하는 것입니다.” "콘서트 무대가 가장 행복하다"는 가왕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전국적 인기를 끈 것을 시작으로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가요계 사상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후 국내 최초 단일 앨범 100만장 돌파, 최초 누적 앨범 1000만장 돌파, 국내 가수 최초 일본 NHK홀 공연 및 '홍백가합전' 출연, 한국 가수 최초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공연, 국내 가수 최초 미국 카네기홀 공연 등 무수한 기록을 세웠다.
조용필은 1990년대 초부터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고 라이브 공연에만 매진했다. ‘가수의 본질은 노래하는 것인데, 방송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2003년 한국 가수 최초로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공연했다. 지난해까지 이곳에서만 8번 공연해 모두 전석 매진 시켰다. 조용필은 신보 발매를 기념해 다음 달 23∼24일과 다음 달 30일∼12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 탄생 콘서트'를 연다.이날 간담회 현장 바깥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조용필의 팬 수십명이 모여 '여전히 무대에서 새 노래로 팬들과 소통하는 당신의 열정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 등을 들고 가왕을 응원했다. 조용필의 20집 실물 CD 음반은 다음 달 1일 발매된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