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막을 사람은 트럼프뿐"…'멸공' 외친 지지자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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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해리스 '초접전'21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최대 도시 피닉스에서 북쪽으로 180㎞를 달리자 ‘트럼프는 안전, 카멀라는 범죄’ ‘트럼프는 낮은 가격, 카멀라는 높은 가격’ 등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팻말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인구 1만명의 작은 마을 세도나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제이슨 가벨 씨(61)는 어떤 후보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이 땅에 공산주의가 펼쳐지는 걸 막을 수 있는 트럼프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힘을 줘 말했다. 다음날 피닉스에서 반대 방향으로 180㎞를 달려 도착한 투손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거리 곳곳과 주택 입구엔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는 팻말이 꽂혀있었고, 해리스 지지 모자를 쓴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투손 도심의 피마 카운티 사무소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알리사 존슨 씨(33)는 “트럼프는 파시스트”라며 “민주주의·여성 인권 등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해리스를 찍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텃밭 주)’로 알려져있던 애리조나주의 표심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으로 빠지고 있다. 특히 같은 주 내에서도 지역·인종·세대·성별에 따라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며 예측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합주 美애리조나 가보니
북부선 “공산주의 막아야”
남부선 “파시즘 막아야”
트럼프·해리스, 3%p차 초접전
21일 워싱턴포스트(WP)가 공개한 7대 경합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애리조나에서의 트럼프 후보(49%)와 해리스 후보(46%)의 지지율 격차는 3%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두 후보 간 초접전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는 24년 만에 애리조나에서 승리했는데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0.3%포인트였다. 2022년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도 양당 후보 간 득표율 격차는 0.67%포인트에 불과했다. 애리조나주는 지역에 따라 확연히 다른 정치 성향을 보인다. 대도시의 외곽 지역에서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게 나타난다. 과거부터 공화당을 지지해온 데다가,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만큼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두려움도 크기 때문이다.반면 제2의 도시 투손은 애리조나가 과거 레드 스테이트로 분류될 때부터 민주당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이날 투손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크리스틴 로이 씨(66)는 “투손에 있는 내 주변인들은 모두 민주당원”이라며 “난 민주당원은 아니지만 트럼프를 뽑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거 인구 유입이 정치 지형 바꿔
가장 혼전을 보이는 곳은 주 인구 700만명 중 500만명이 사는 피닉스 광역권이다. 피닉스가 속한 마리코파 카운티는 과거 공화당의 안전한 지역구로 꼽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이곳에서 75년만에 승리하며 정치 지형의 변화를 예고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뀐 인구 구성에 있다. TSMC와 인텔 등 반도체 업체들이 피닉스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잇따라 건립하며 젊은 새로운 인구가 대거 유입됐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 많은 스타트업이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율과 물가를 피해 피닉스와 인근의 템피로 본사를 이전하며 민주당 성향이 강한 고학력 인구도 늘었다.실제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템피에 있는 애리조나주립대(ASU)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답변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라틴계 남성 크리스찬 살라즈 씨(21)는 “트럼프가 인종차별적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다”며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실제 기업 경영 경험이 있는 트럼프가 경제를 더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흑인 여성 데브라 맥대니얼 씨(59)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다신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며 “반면 해리스는 훌륭한 대통령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거 지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과 갈등을 빚은 것도 원인으로 꼽는다. 2018년 사망한 매케인 전 의원은 애리조나 지역구에서 1982년부터 하원의원 재선, 1986년부터 상원의원 6선,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낸 지역의 최대 정치 거물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5년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인 매케인 전 의원을 향해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뿐 전쟁 영웅이 아니다”고 비난했고, 매케인 전 의원은 2017년 트럼프 당시 행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오바마케어 폐지에 반대표를 던졌다. 과거 두 사람의 갈등에 그의 부인은 지난 대선 바이든 대통령 지지 선언을 했고,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11일 애리조나를 찾아 매케인 전 의원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관건은 '무당층' 유권자
선거인단 11명이 걸려있는 애리조나에서의 승패는 결국 무당층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선거 양상이 과열되며 피로도를 높이는 유권자가 늘어난 동시에, ‘이 후보만큼은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늘어났기 때문이다.ASU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사마라 스위포드 씨(33)는 “원래 투표를 잘 안 하지만 트럼프를 막기 위해 이번엔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엄마의 설득에 해리스에 투표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미셸 씨(41)는 “이번 선거는 유난히 홍보물이 많이 온다”며 “남편의 설득에 트럼프를 찍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피닉스=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