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가운 속엔 미술에 대한 열정 가득…그림으로도 치유하죠”

한국의사미술회 ‘그림 그리는 의사들’展
10월29일부터 11월10일까지 르한스갤러리

이강온 한국의사미술회장 “그림으로 소통하고 치유”
이강온, 숲으로부터-울산 대공원, 53.0×72.7cm, oil on canvas, 2024. /한국의사미술회
“평범한 의사지만, 가운 속엔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가득해요. 그림은 소통이자 치유의 도구죠.”

흰 진료 가운을 벗고 병원을 나와 작업실로 향한다. 물감 냄새 물씬 나는 이곳에서 청진기 대신 붓을 쥔다. 인상 깊었던 풍경을 기억 속에서 꺼내 아픈 환자를 살피듯 정성스레 캔버스에 담다 보면 어느새 찾아오는 고요한 밤. 전국 각지에 퍼진 26명의 ‘그림 그리는 의사들’의 하루다. 낮엔 의업을, 밤엔 화업을 병행하는 일상을 보내는 의사 겸 화가들이다.
배성기 '껴안다' 53.0x45.5cm oil on canvas. /한국의사미술회
'한국의사미술회'라는 간판 아래 모인 의사 26인이 병원이 아닌 갤러리에 모인다. ‘그림 그리는 의사들’이라는 명료한 전시 제목으로 오는 29일부터 11월10일까지 서울 성북동 르한스갤러리에서 올 한해 그린 그림들을 선보인다. 2006년부터 전주, 천안, 울산,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며 벌써 19회를 맞이한 나름 유서가 깊은 전시다. 지난 22일 만난 이강온 한국의사미술회 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 후 출근하고, 또 퇴근하면 밤까지 정말 열심히 그렸다”고 설명했다.
최재걸 'Women carrying water', 36×51cm, watercolor on paper, 2024. /한국의사미술회
한국의사미술회는 그림을 통해 환자와 교감을 넓히려는 취지로 2005년 설립된 모임으로 41명이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아름다운 만남 행복한 동행’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봄 회원들로 구성된 정기전을 여는데, 가을엔 그림을 좋아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림 그리는 의사들’ 전시를 열고 있다. 이 회장은 “의업과 화업 중 어떤 게 본업인지 모를 정도로 다들 미술을 사랑한다”면서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개인전을 연 의사들도 많다”고 했다.

실제로 이 회장만 해도 의학박사인 동시에 미술학사 학위가 있고, 울산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울산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면서 “의대에 들어가 조금씩 그림을 그렸고, 전문의를 딴 후에 본격적으로 꿈꿨던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뿐 아니라 회원들은 홍익대 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거나, 국내외 아트페어에 작품이 출품될 정도로 상당한 전문성을 자랑한다.
장혜숙 '사랑, 그 이상의 사랑으로' (With love, more love than that), 61×61cm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2024. /한국의사미술회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풍경이나 정물, 인물 등을 담아낸 구상회화가 많다. 이 회장은 “개인적으론 매일 맨발 걷기를 하는 울산 대공원 산길을 그린 ‘숲으로부터’ 시리즈를 출품했는데, 아무래도 주위의 풍경 등을 주로 그리는 것 같다”면서도 “올해 전시에 참여한 장혜숙 회원의 경우엔 봄 전시에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디지털아트로 만든 작품을 내는 등 색다른 그림도 선보이고 있다”고 했다.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첨예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고답적인 미술에만 몰두한다는 시선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이 회장은 “모두가 사회 참여 의식이 강하고, 사회와 유리된 미술은 의미도, 진정성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이유에서 코로나19가 힘들었던 지난해엔 이대서울병원에서 전시를 열고, 또 작품들을 환자들이 볼 수 있게 병원에 기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강온 한국의사미술회 회장. /한국의사미술회 제공
이 회장은 “병원이란 공간이 환자에겐 답답하고 스트레스받는 공간일 수 있는데, 전시하거나 진료실에 그림을 걸면 환자들이 몇 번씩 보러 오기도 하며 위안을 얻는다”며 “그림을 매개 삼아 의사와 환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