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태양 빛처럼 예술 작품이 펼쳐지고 있는 런던의 서머셋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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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민선의 런던 리뷰 오브 아트아프리카와 디아스포라는 미술계의 트렌드
1-54 아트페어 리뷰
아프키라 현대 미술을 알리는 데 전념,
런던, 뉴욕, 마라케시에서 연 3회 개최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민자들이 늘어나는 세계정세와 맞물려서일까. 최근 몇 년 새 미술계에서 디아스포라 예술이 키워드로 부상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12회째를 맞는 아프리카 및 디아스포라 아트페어인 1-54가 여느 해보다 주목받는 분위기였다. 지난 10일(현지시간)~13일 런던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에서 열린 1-54 페어를 다녀왔다.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런던과 같은 기간에 런던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인 서머셋 갤러리에선 개성 넘치는 위성 페어 1-54가 개최됐다. 프리즈가 굵직한 대기업이라면, 1-54는 스타트업 같은 느낌. 1-54는 프리즈 기간에 런던을 찾는 미술계 큰손들을 겨냥, 취향을 세분화해 기획한 위성 페어다. 하지만 미술계에선 체급으로만 우열을 정할 수 없다. 프리즈의 거대한 규모가 버겁거나 취향이 유독 아프리카 예술에 있다면 1-54를 선택하는 것도 영리한 전략이다.
1-54는 변방의 페어로 시작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은 프리즈와 함께 거론될 정도로 열기가 대단하다. 올해는 23개국에서 6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예술 등 모두 160명 이상의 아티스트 작품이 서머셋 갤러리 곳곳에 걸렸다. 그중 3분의 1 이상은 아프리카 갤러리에서, 나머지는 런던, 뉴욕, 파리, 밀라노, 홍콩, 상파울루 등 주요 도시 갤러리가 참여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올해 런던 1-54 페어를 찾은 관람객만 최종적으로 2만 2000명을 훌쩍 넘겼다. 이 박람회는 매년 런던, 뉴욕, 마라케시에서 열린다.
2013년 1-54 페어를 설립한 투리아 엘 글라우이(Touria El Glaoui)는 “올해 박람회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나라의 아티스트를 하나로 모았고, 많은 아티스트가 런던 에디션에 처음 참여했다”며 “특히 올해는 모로코, 가나, 브라질의 아티스트를 강조했다”고 말했다.런던 서머셋 갤러리 3개 건물을 모두 활용해 펼쳐진 페어에서는 가나, 모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갤러리에서 온 주요 작품들이 걸렸다. ADA 현대미술 갤러리(가나), 아마사카 갤러리(우간다), 아트 판테온 갤러리(나이지리아) 등이 신규 갤러리로 참여해 보다 풍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갤러리는 차별화된 지역색,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작렬하는 태양 빛과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 산과 나무 등 아프리카 풍경에서 영향을 받은 채도 높은 색감, 지역색이 드러나는 독특한 재료로 빚어낸 예술작품들이 낯설고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고유의 원색 계열 색채감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명 화가인 에스더 마흘랑구(Esther Mahlangu), 나미비아 출신의 현대 미술가 튈리 메콘조(Tuli Mekondjo), 모로코 출신의 무스 람라바트(Mous Lamrabat)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관람객이 몰렸다.남부 아프리카의 은데벨레 부족의 전통적인 기하 패턴과 색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에스더 마랑구의 작품은 프리즈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1-54 페어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아프리카 전통 예술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예술가로, BMW의 아트 카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영감을 줬다.신진 아티스트로는 프레야 브램블 카터(Freya Bramble-Carter)나 라요 브라이트(Layo Bright) 등이 페어에 참여했고, 모로코나 가나, 브라질의 대표 아티스트들도 고유의 민족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페어를 다채로운 매력으로 채웠다.
올해 행사를 위한 특별 작품들도 중간중간 페어에 활기를 더했다. 서머셋 하우스의 야외 코트야드에는 런던 기반의 나이지리아 아티스트인 슬론(Slawn)의 작품 <Transition>이 설치됐다. 작품은 런던의 상징물인 이층버스를 런던에 살아가는 아프리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작가는 런던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로 이들의 심리, 정치, 인종, 정체성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데 이층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프랑스 출신 모로코인 소피아 카미시(Sofia Kapnissi)는 대형 체스판을 활용해 그의 패션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결합해 <Zoubida>로 창조했다. 작가는 현장에 상주하며 체스 작품과 함께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유도하는 등 창의적인 발상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했다.1층 전시관 입구부터 테레사 웨버(Theresa Weber)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웨버의 <Fruits od Hople>라는 작품은 파란색 천과 구슬로 엮은 작품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이는 디아스포라로 살지만 세계의 일부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푸른색은 카리브해 노동자들로 상징되는 식민지의 역사, 과일 모양의 구슬은 여성성과 풍요를 표현한다.이와 함께 웨버의 작품 <Haiti Revolution>은 1790년대 아이티와 프랑스의 혁명을 모티브로, 드로잉에 점토와 비즈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다.
고향을 떠나 이민자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유독 이번 페어에서 존재감이 넘쳤다. 독특한 색감과 아프리카 고유의 뜨거운 태양, 넓은 대지, 낮은 산봉우리, 풍경으로 가득한 이 페어는 상업성보다 예술 공동체, 커뮤니티로도 큰 존재감을 가진다. 이젠 니치(niche)가 아니라 글로벌 현대예술의 아주 중요한 부분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발견’에서 ‘존중과 인정’으로
처음부터 이렇게 성황이었던 건 아니다. 개최 첫해인 2013년만 해도 세계 미술계에서 아프리카와 디아스포라 작가 작품들은 저평가 돼 있었다. 아프리카 예술은 주류 미술계의 주변부로 인식되었다.
1-54는 매해 꾸준히 미술계의 인식을 바꿔나갔고 점차 현대 예술의 중심부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그 누구도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작품을 니치 마켓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계 미술계의 트렌드로 거론될 정도로 성장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페어는 자연스럽게 상업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주최 측 관계자는 “갤러리들은 평균적으로 5000파운드~2만 파운드 사이의 작품을 판매, 상당수의 갤러리 부스는 작품을 모두 팔아치우는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투리아 엘 글라우이는 디아스포라 작가들에 대한 주류 미술계의 반응이 “발견의 서사에서 존중과 인정의 서사로 바뀌었다”라고 평가했다. “과거 아프리카 예술은 저평가 받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아트 페어에서 아프리카 예술가를 볼 수 있고, 컬렉터와 갤러리들은 이제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점점 인정하는 분위기다”라고 현재를 짚었다.이어 그는 “장기적인 목표는 1-54의 범위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아프리카 예술 아트 페어를 넘어 전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탐색 중”이라면서 “앞으로는 ‘아프리카 예술’이라는 틀을 넘어서, 글로벌한 맥락 안으로 잘 어울리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