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코트도 못 입었는데 벌써"…동장군 공포에 '발칵' [현장+]

'가을은 멋 부리기 좋은 계절' 옛말
"집에 있는 가을옷도 못 입을 판"
동대문 소매 상인 "가을옷 주문 줄였다"

대신 월동 준비 빨라진 분위기
"올겨울 한파 예측에 수요 늘어"
"가을옷 판매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어요. 날씨 감안해서 적게 주문한 건데도 재고가 잔뜩 남았어요."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여성 의류 소매 매장을 운영하는 50대 박모 씨는 "이번주 내내 패딩이 더 잘 팔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상 최악의 장기폭염을 기록하는 등 줄곧 더웠다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가을 의류가 팔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재고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묻는 질문에 박 씨는 "오프라인 매장은 우선 겨울옷 위주로 진열하고,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을 옷을 세일가로 판매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까지 이어진 폭염(일 최고기온 33도 이상)이 끝나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의류 업계에서는 재고로 쌓인 가을 의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인들은 발 빠르게 패딩 등 겨울 의류 판매에 집중하는가 하면, 가을 의류는 '세일가'로 처분하는 상황이다.

"여름 너무 길었다"

24일 점심께 방문한 서울 중구 동대문 패션거리 일대. 한 계절 앞선 제품을 판매하는 도매 매장은 물론이고 밀리오레 등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옷을 판매하는 소매 상인들도 패딩 점퍼와 양털조끼, 울 코트 등을 매대에 진열해둔 모습이다.

APM 쇼핑몰 1층에서 여성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이진아 씨는 "9월에 날씨가 선선해야 가을 옷을 파는데 (올해는) 너무 더웠다"며 "트렌치코트 등 얇은 의류는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구매한다. 애초에 가을 옷 주문량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트위드 소재의 자켓과 가디건이 진열돼 있던 매장을 운영하는 전모 씨도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양털 조끼나 숏패딩 등 겨울 신상이 더 잘 나간다"고 밝혔다.

패션 업계 덮친 '동장군' 공포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지난 19일 강원도 북부 산지에 올해 여름 이후 처음 한파 특보가 발효됐다. 지난해 한파 특보가 처음 내려진 시점은 2023년 11월 6일이었다. 역대급 폭염 기록을 경신한 데 비해 추위는 지난해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이다. 시민들이 가을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이러한 분위기는 백화점과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도 감지되는 모양새다. 전날 방문한 강남구 일대 쇼핑몰, 백화점의 마네킹들도 대부분 두꺼운 패딩과 목도리로 꾸며져 있었다.

한 SPA브랜드 의류 매장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권모 씨는 "집에 있는 트렌치코트도 못 입었는데 아침에 너무 추워서 경량 패딩을 꺼내입었다"면서 "특히 올겨울은 춥다는 예보가 많아서 그런 건지 옷 가게마다 한겨울용 외투(아우터)만 있고 가을은 건너뛴 느낌"이라고 전했다.

7년째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유명수 씨는 "9월에 팔아야 할 얇은 긴팔 등 가을옷이 잘 안 팔렸다"며 "10월 초부터 겨울옷 준비에 돌입한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미 자신의 쇼핑몰을 롱 코트, 패딩 등 겨울 시즌에 맞춰 세팅해두었다는 유 씨는 "가을이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이 갖고 있던 가을옷으로 버티고 바로 겨울옷을 장만하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패션 플랫폼 W컨셉이 이달 16일부터 22일까지의 플랫폼 내 의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겨울 의류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특히 아우터 중에서는 코트의 판매량이 30% 늘었다. 캐시미어 소재의 니트 매출도 162% 증가해 보온성이 좋은 의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W컨셉 관계자는 "올겨울 한파가 예보되면서 미리 월동 준비를 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