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가장 사랑한 남자…150년전 '파리지앵'의 우울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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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최고 화제 전시그날의 파리에도 비가 내렸을까. 부부로 보이는 중산층 남녀 한 쌍이 우산을 쓴 채 걷고 있다. 고개를 떨구고 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은 저마다 수심에 잠긴 모습이다. 빗물에 빛이 반사되며 반짝이는 거리는 한 장의 사진처럼 생생하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의 역작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1877)이다.
오르세미술관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오는 파리 북부 더블린 광장
마치 카메라로 촬영하듯 그려
현재 모습과 거의 비슷해 놀라
고급 아파트 짓는 노동자 그린
'대패질하는 사람들'처럼
보통 사람들의 생활·움직임 묘사
강인한 남성성 강조하던 시대
차 마시거나 보트 탄 남성 그려
초기 인상주의 성장 견인
"카유보트가 없었다면
모네·르누아르도 없었다"


“카유보트는 파리 시민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도시의 모습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주변 작가들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죠.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모네, 르누아르도 없었을지 몰라요.”
화가이자 미술품 수집가, 예술 후원자, 군인, 법학자, 요트 선수…. 카유보트한테 따라붙는 여러 꼬리표 중 일부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는 단연 ‘파리가 사랑하는 화가’다. 이달 8일부터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회고전 ‘카유보트: 페인팅 맨’ 입장이 아트 바젤 파리 주간 내내 조기 마감된 이유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특별한 의미나 상징을 부각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듯 파리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작가의 가족이 첫 번째 피사체였다. 1875년 작품 ‘당구(Le Billart)’는 그림 왼쪽 부분이 미완성 상태로 비어 있는데, 일각에선 직전 해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를 위한 여백으로 추정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도 그의 손끝에선 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고급 아파트 바닥을 손질하는 노동자들을 그린 ‘대패질하는 사람들’(1875)이 단적인 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인이나 군인, 상류층이 아닌 이들을 화면에 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성껏 묘사한 대목에서 ‘보통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돋보인다.이처럼 작가는 당대 서양화가들이 다루던 주제의 폭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 한가롭게 레저를 즐기거나 차담(茶談)을 나누고, 알몸으로 몸을 정돈하는 남성들도 그렸다. 강인한 남성성을 강조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미뤄 볼 때 파격적인 소재였다.
그의 작업은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후손들이 그의 컬렉션을 꺼내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사진을 연상케 하는 독자적인 표현기법과 폭넓은 주제 선정, 초기 인상주의의 성장을 견인한 행보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오르세미술관을 비롯해 미국의 아트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와 킴벨미술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내년 1월 19일까지.전시는 이후 2~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게티뮤지엄, 6~10월 아트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로 무대를 옮긴다.
파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