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게 더 이상한 상황"…삼성전자 주가 유독 부진한 이유 [위기의 삼성전자 下]

[위기의 삼성전자 下]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

왜 하이닉스만 웃었나
"AI 반도체 주도권이 희비 갈랐다"
"5만전자, 실적부진 탓만은 아냐…의사결정 불신 커"
"새 결단으로 기술적 리더십 보강 기대…매수 유효"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최혁 기자
최근 세계 1위 메모리 기업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주도권을 넘겨줬고 중국 업체의 저가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하지 못했고 파운드리(위탁 생산)에서는 TSMC와의 기술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마저 악화하면서 삼성전자는 '나홀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모든 자산을 장부가치로 청산한 '청산가치' 밑으로 떨어졌다. 한경닷컴은 증권가 전문가들에게 '5만전자'로 밀려난 삼성전자의 향배를 물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8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D램 설계 변경 등 경영진의 '결단'이 필요한 때"라며 "변화가 숫자로 나타나기까지 최대 2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김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SK하이닉스 주가는 최대 실적에 힘입어 석 달 만에 '20만닉스'를 회복했다. 삼성전자와 주가 흐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향 매출 비중이 늘었다. 이 점이 두 회사의 희비를 갈랐다. 이번 분기 기준으로 전체 D램 매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비중이 약 30%를 차지했고 낸드 매출에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가 60%를 차지했다. 이런 이유로 SK하이닉스가 'AI 업체'로 각인돼 높은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을 부여받고 있는 듯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매출이 일부에 해당하는데, 이마저도 전사 매출에서 비중이 계속 줄고 있다. HBM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못 내다보니 AI에 대한 매출 비중이 낮아 상대적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HBM의 비중이 적다는 건 곧 전통적인 D램의 매출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PC·스마트폰 수요의 개선세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D램 수요도 하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업체들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결국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늘어나는 모양새인 것이다. 하지만 이건 SK하이닉스에도 적용된다. 두 회사의 주가 차별화는 'AI향 매출 비중'에서 기인했지만, 큰 틀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고점 대비 밀린 것은 이런 레거시(범용) 수요 부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최혁 기자
▷파운드리에서의 부진도 길어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스마트폰) 갤럭시 S시리즈 모델에 들어가는 자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AP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 경우엔 수주가 부진해 파운드리 가동률이 보장을 못 받게 되는데, 적자폭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주가가 유독 부진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올 2분기 때 10조원을 웃도는 영업 흑자를 기록했다. 어찌 보면 강한 호실적을 냈던 과정에서 선반영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때문에 이번 3분기 때는 기저효과로 인해 투자심리가 더 위축됐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에 증익을 했지만 삼성전자는 감익됐다. 이익이 빠졌는데 주가가 오르는 게 더 이상하다. 경영진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큰 점도 부담이었다. 'HBM 실패'를 부른 과거 경영진들의 의사결정에 대한 불신이 누적됐다."

▷지금의 삼성전자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시장을 오래 봐 온 한 사람으로서 삼성전자에 의문인 것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지 여부다. 또 이 위기의식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경영진이 새로운 '결단'을 내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 실적 발표와 함께 이례적 '사과문'이라는 흔적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적극 책임을 지겠다', 나아가 '개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경영진의 새로운 결단이라면?

"자구책을 내놓을 것 같다. 연말 인사철인 만큼 전반적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한 뒤 경영전략을 다시 한번 재수립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조정이 예상된다. D램에 대한 설계를 바꾼다든가 하는 큰 결단이 발표된다면 1~2년은 있어야 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경우 주가는 선반영될 것이다."

▷새 결단으로 기술적 리더십을 보강한다는 전제 하에선 지금이 '저점 매수' 시기라는 말인가.

"그렇다. HBM3E 8단과 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진행 중인 퀄(품질) 테스트에서 호재가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트리거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대로 삼성전자가 무기력하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현재 주가가 기존 장부가치나 내재가치 정도도 안 되는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현 주가는 '언더슈팅'(과도한 하락)돼 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로 내려온 역사적으로 몇 안 되는 시기 중 한때를 겪고 있다. 시간문제일 뿐 설계 문제에 대한 방향성만 찾으면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모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삼성전자가 증시 대장주로서 지위를 위협받고 있단 얘기도 들린다."장기적으로 대장주 지위는 유지될 것이다. '5만전자'라는 상황은 단순히 실적 부진에서 기인했다고 보지 않는다. 불안한 국제 정세와 매크로(거시 경제) 영향도 받았고, 무엇보다도 SK하이닉스 대비 한국 증시의 대표성이 큰 업체이기 때문에 투자심리 타격을 일선에서 받았다. 수급적인 해석을 보태자면 코로나19 당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거셀 때 개인 주주가 삼성전자에 대거 몰렸다. 큰 틀에서 투자주체 중 개인 비중이 확 커지니까 호재나 악재가 나오더라도 수급이 방향성을 갖지 못하고 꼬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높은 가격대에 물린 이들이다. 개인 주주들 비중이 높아진 것도 삼성전자에 대한 평가가 박해진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덩치가 큰 만큼 유독 걸림돌이 많은 종목이지만, 경영진의 밸류업 리더십을 믿어볼 만한 때라고 본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