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안 낳냐" 물었다가…26년 근무 부서에서 쫓겨난 사연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애 낳을 생각없냐" 질문했다가 성희롱 징계
26년 근무 부서에서 방출되자 '소송'
법원 "출산 암시 발언은 성적 언동"
경징계여도 성희롱이면 격리 조치 필수
전문가들 "회사는 엄격, 신속한 조치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남자 상사가 미혼인 친구에게 '한국이 저출산이니까 애를 낳아야 하지 않냐'고 했어. 친구는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성희롱인지 애매한것 같다고 하는데, 다른 친구는 '빼박(명백하게)' 성희롱이래. 어떻게 봐야해?"

최근 한 온라인 게시판에 "애 낳으라는 말도 성희롱인가"라는 질문이 올라와 화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애를 낳아야 한다"는 참견성 조언을 하는 속칭 '꼰대'가 부쩍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 시대에 애 낳을 생각이 없냐"라고 질문한 것은 성희롱에 해당하며, 발언자를 타부서로 발령 낸 것도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전문가들은 "성희롱에 엄격한 법원의 입장이 잘 나타난 판결"이라며 "인사담당자들은 성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언동을 차단할 수 있는 예방 교육을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애 낳을 생각 없어?" 질문 던졌다가...26년 근무 부서에서 '아웃'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최근 근로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징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청구를 기각했다.

유명 통신사에 다니던 A씨는 2022년 회사에서 개최한 '조직개선 프로그램'에 팀원들과 함께 참가했다. 그 일환으로 아침 9시 사내 카페에서 열린 '스몰토크' 시간에 참석한 A씨는 저조한 한국 출산율 얘기가 나오자 "애를 많이 낳는 게 애국"이라고 얘기하다가, 갑자기 미혼인 여성 동료 B를 향해 "멀리 볼 것도 없어. 애 낳을 생각 없어?"라고 질문을 던졌다. B가 정색하고 "그런 얘기 불편하다"라고 말하자 A는 "그럼 즐거운 얘기를 하자"며 화제를 돌렸다.하지만 B는 이틀 후 "미혼인 내게 아기를 낳으라는 말을 한 것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며 A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이에 회사는 곧바로 징계위를 열고 "미혼에게 출산 의사를 물어본 것은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언행"이라며 A에게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견책 처분'을 내렸다. 이어 A에게 26년간 근무한 부서 대신 타부서로 발령을 냈다.

A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성희롱은 아니다"라며 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 신청을 냈다. A는 "새 부서 업무 적응에 어려움이 있고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인사 발령을 취소해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노위에서 구제신청이 기각되자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건 것이다.
"애안낳냐"는 질문은 더이상 농담으로 넘기기 어려워졌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법원 "출산 암시 발언은 성적 언동"

하지만 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동석자 중 유일한 미혼인 B를 지칭해 출산을 암시한 발언은 일반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성적 언동"이라며 "견책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가 "예전에도 꼭 결혼 얘기나 왜 아이를 안 낳는지 모르겠다는 얘기에는 A가 나를 지목했었다"고 진술한 점, 그 자리에 있던 동료들이 "(우리끼리) 미혼에게 애 낳으라는 발언은 성관계가 내포된 위험한 발언이라는 얘기를 나눴다"고 증언한 점도 근거로 삼았다.A는 "기분 나빠하는 포인트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성희롱과 다르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회적 관계, 장소와 상황 등에 비춰 성적 굴욕감을 유발한 게 넉넉히 추단된다"며 "B가 사건 이후 동료들에게 울면서 하소연한 점을 봐도 성적 불쾌감을 느낀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부서 발령에 대해서도 "피해자 보호 조치로 행해진 것으로서 분리할 필요가 크고,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사용자 조치 의무"라며 "같은 건물에서 사무실 층수의 변동만 있을 뿐이라 근로자가 감내할 수 없는 불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결은 A씨의 항소 포기로 최종 확정됐다.

○'성희롱' 확인되면 사업주 조치 '필수'

성희롱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므로 두부 자르듯 명확한 기준은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규율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불확실하면 법원은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피해자가 주장한 진술·증명력에 무게를 실어주는 편이다.

따라서 인사담당자들은 성희롱 진정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진술을 신속히 확보하고 증거 조사를 최대한 빠르게 하는 편이 좋다. 특히 성희롱 사건은 아무리 가벼운 이슈여도 외부로 유출될 경우 치명적인 평판 훼손, 조직문화 저해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조치가 지연될 경우 피해자의 정서적 상황 악화, 2차 피해 우려도 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성희롱으로 판명됐다면 징계의 수위와 관계 없이 사업주에게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피해 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 휴가의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